8월/오연희
때글때글 영근 연둣빛 포도송이에 눈길이 닿자
시큼한 침이 금세 입안 가득 번진다
머잖아 하얀 분 뽀송뽀송한 짙은 보라로 물들 것이고
난 조심스레 그들을 내 것으로 만들 것이다
한 송이 톡, 따내는 상상만으로도 손끝이 짜릿짜릿하다
그런데 눈도장 소홀히 한 며칠 사이 사달이 났다
알맹이가 쏙 빠져나가 너덜너덜해진 까만껍질
입질 하다 만 알갱이를 안스럽게 감싸 안은 뭉그러진 보라껍질
열등아처럼 끼어있는 청포도까지
포도즙으로 엉긴 포도송이의 몰골이 가관이다
일 년 내내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면서 귀신같이 때를 아는 다람쥐
어디 나타나기만 해봐라, 눈을 부라리는데
나 잡아 봐라, 는 듯 담벼락 위를
고성능 바퀴 굴리듯 곡예를 부리며 달려가고 있다
놈을 따라 정원의 눈들이 일제히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
푸른 하늘 출렁대는 8월의 뜨락.
미주시학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