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찾지 못한 답
미주 중앙일보 교육 섹션 '현장 엿보기'(나중에 '학부모 칼럼'으로 바뀜)를 시작으로 최근 연재하고 있는 '이 아침에'까지 신문에 글을 싣기 시작한 지도 13년이 흘렀다. 횟수로 6년 동안 연재했던 학부모 칼럼은 아이가 대학에 들어간 후 그만두었다. 글의 소재도 현장감도 떨어질 것 같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 후 긴 스토리를 엮고 싶은 강렬한 욕구로 일 년 동안 세 편의 소설을 썼다. 소설가가 되기에는 경험도 상상력도 창의력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쓰고 난 후에야 깨달았다.
좀 더 차분해진 마음으로 다시 수필을 쓰기 시작했다. '학부모 칼럼'을 쓰던 당시에도 '이 아침에' 필진으로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가끔 독자들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그들은 신문사를 통해 연락처를 얻었다며 조심스럽게 운을 뗀다.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스크랩을 해 놓을 정도로 내 글을 좋아하는 애독자라며 꼭 한번 대화를 나누고 싶어 용기를 냈다는 분도 있고, 자신의 답답한 사연을 글로 좀 써 달라고 부탁을 해 오는 분도 있다. 넘치는 칭찬에 더 좋은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지만 그 만큼 긴장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자신의 처지나 견해를 대변하는 글을 써 달라는 요청에는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낀다.
그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메모해 두었다가 그 사연을 글 속에 녹여 낼 때도 있다. 그런데 사연을 들려준 사람의 입장만 생각하다 보면 자칫 편파적인 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신경이 많이 쓰인다. 가능하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로 일반화시켜서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한 단체의 요직에 있는 한 지인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단체를 띄우는 글을 신문에 기고해 달라는 은근한 부탁에 단호한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가 아주 서먹한 관계가 된 적도 있다. 이런저런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하지만, 어눌하기 짝이 없는 나의 글 솜씨를 믿고 마음을 열어 준 분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감사하다.
지난 십 수년 동안 전화로 혹은 이메일로 털어놓은 이런저런 사연의 큰 줄기만 아주 희미하게 기억한다. 갈등과 번민이 우리 삶의 속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모두 그 순간을 잘 건너왔으리라. 그런데 세월이 한참 지났는데도 잊혀지지 않는 사연 하나 내 가슴에 뚜렷이 남아 있다. 한 아버지로부터의 절박한 음성이 지금까지도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사연을 요약하면, 유학생으로 미국 온 자신의 아들이 대학 재학 중 어이없이 발생한 한 사고로 장애인이 되었다. 미국 정부의 배려로 영주권도 받고 장애우에 대한 혜택도 받게 되었다. 한국에 사는 부모인 자신들이 미국에 와서 몇 년 째 그 아들을 돌보고 있다. 이제 그만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인데 그 아들을 보살펴 줄 사람이 없어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말씀의 주요 내용은 털어놓은 이야기와 함께 '그 아들을 평생 곁에서 돌봐 줄 아들의 배우자를 찾고 있다.' 라는 사연을 글로 써 달라는 그런 부탁이셨다. 가만 듣고보니 쉽게 생각할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의 문제 또한 아니었다.
그 아버지의 절절한 심정이 느껴져 '곤란한데요.'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아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끓으려는데 연락을 기다린다며 전화번호를 주셨다. 가슴에 돌덩이가 얹힌 듯 마음이 무거웠다. 그 부모님의 안타까운 심정은 백번 이해가 가지만, 혹여 내 글로 인해 그 아드님의 배우자가 되기로 자원할지도 모를 어느 가정의 딸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딸의 부모입장을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얼마나 막중한 책임이 느껴지던지 그 아드님을 향한 신의 가호가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 그 부탁을 들어 드릴 자신도 없고 거절하는 전화도 드릴 수가 없었다
'원하고 바라는 것이 간절하면 하늘도 돕는다.'라는 말을 나는 종종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간절한 음성을 떠올린다. 그 아드님은 그 후 가까이에서 인연을 찾았을 것만 같고, 또한 재활훈련도 잘해서 어쩌면 사회활동도 조금씩 하고 있을 것만 같다. 아마도 그리 믿고 싶은 것일게다. 나는 그 아버지를 모르지만, 지면을 통해 그분은 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내 앞에 나타나 '내가 그때 전화했던 사람이요.' 한다면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아직도 난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글을 다 써놓고 다시 생각해 본다. 꼭 말이 필요할까?
그냥 지금 살아가는 이야기로 바로 넘어가게 되지 않을까?
해외문학 2014
미주 중앙일보 교육 섹션 '현장 엿보기'(나중에 '학부모 칼럼'으로 바뀜)를 시작으로 최근 연재하고 있는 '이 아침에'까지 신문에 글을 싣기 시작한 지도 13년이 흘렀다. 횟수로 6년 동안 연재했던 학부모 칼럼은 아이가 대학에 들어간 후 그만두었다. 글의 소재도 현장감도 떨어질 것 같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 후 긴 스토리를 엮고 싶은 강렬한 욕구로 일 년 동안 세 편의 소설을 썼다. 소설가가 되기에는 경험도 상상력도 창의력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쓰고 난 후에야 깨달았다.
좀 더 차분해진 마음으로 다시 수필을 쓰기 시작했다. '학부모 칼럼'을 쓰던 당시에도 '이 아침에' 필진으로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가끔 독자들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그들은 신문사를 통해 연락처를 얻었다며 조심스럽게 운을 뗀다.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스크랩을 해 놓을 정도로 내 글을 좋아하는 애독자라며 꼭 한번 대화를 나누고 싶어 용기를 냈다는 분도 있고, 자신의 답답한 사연을 글로 좀 써 달라고 부탁을 해 오는 분도 있다. 넘치는 칭찬에 더 좋은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지만 그 만큼 긴장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자신의 처지나 견해를 대변하는 글을 써 달라는 요청에는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낀다.
그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메모해 두었다가 그 사연을 글 속에 녹여 낼 때도 있다. 그런데 사연을 들려준 사람의 입장만 생각하다 보면 자칫 편파적인 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신경이 많이 쓰인다. 가능하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로 일반화시켜서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한 단체의 요직에 있는 한 지인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단체를 띄우는 글을 신문에 기고해 달라는 은근한 부탁에 단호한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가 아주 서먹한 관계가 된 적도 있다. 이런저런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하지만, 어눌하기 짝이 없는 나의 글 솜씨를 믿고 마음을 열어 준 분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감사하다.
지난 십 수년 동안 전화로 혹은 이메일로 털어놓은 이런저런 사연의 큰 줄기만 아주 희미하게 기억한다. 갈등과 번민이 우리 삶의 속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모두 그 순간을 잘 건너왔으리라. 그런데 세월이 한참 지났는데도 잊혀지지 않는 사연 하나 내 가슴에 뚜렷이 남아 있다. 한 아버지로부터의 절박한 음성이 지금까지도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사연을 요약하면, 유학생으로 미국 온 자신의 아들이 대학 재학 중 어이없이 발생한 한 사고로 장애인이 되었다. 미국 정부의 배려로 영주권도 받고 장애우에 대한 혜택도 받게 되었다. 한국에 사는 부모인 자신들이 미국에 와서 몇 년 째 그 아들을 돌보고 있다. 이제 그만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인데 그 아들을 보살펴 줄 사람이 없어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말씀의 주요 내용은 털어놓은 이야기와 함께 '그 아들을 평생 곁에서 돌봐 줄 아들의 배우자를 찾고 있다.' 라는 사연을 글로 써 달라는 그런 부탁이셨다. 가만 듣고보니 쉽게 생각할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의 문제 또한 아니었다.
그 아버지의 절절한 심정이 느껴져 '곤란한데요.'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아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끓으려는데 연락을 기다린다며 전화번호를 주셨다. 가슴에 돌덩이가 얹힌 듯 마음이 무거웠다. 그 부모님의 안타까운 심정은 백번 이해가 가지만, 혹여 내 글로 인해 그 아드님의 배우자가 되기로 자원할지도 모를 어느 가정의 딸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딸의 부모입장을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얼마나 막중한 책임이 느껴지던지 그 아드님을 향한 신의 가호가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 그 부탁을 들어 드릴 자신도 없고 거절하는 전화도 드릴 수가 없었다
'원하고 바라는 것이 간절하면 하늘도 돕는다.'라는 말을 나는 종종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간절한 음성을 떠올린다. 그 아드님은 그 후 가까이에서 인연을 찾았을 것만 같고, 또한 재활훈련도 잘해서 어쩌면 사회활동도 조금씩 하고 있을 것만 같다. 아마도 그리 믿고 싶은 것일게다. 나는 그 아버지를 모르지만, 지면을 통해 그분은 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내 앞에 나타나 '내가 그때 전화했던 사람이요.' 한다면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아직도 난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글을 다 써놓고 다시 생각해 본다. 꼭 말이 필요할까?
그냥 지금 살아가는 이야기로 바로 넘어가게 되지 않을까?
해외문학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