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이야기
코로나로 교회 식당이 문을 닫은 후 친교가 사라졌다. 음식 냄새와 왁작거리는 소리가 끊어진 친교실의 적막함이라니, 밥을 함께 먹는 것은 그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알 것 같았다. 밥상 친교의 맥을 이으려는 듯 우리 교회에서는 예배가 끝난 후 은박지로 예쁘게 싼 김밥을 나눠 준다. 극심한 코로나로 인해 음식이 일절 허용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먹기 간편하고 영양 만점인 우리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 새삼 크게 느껴진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었는데도 집에 오는 동안 차 안에서 야금야금 김밥을 다 먹어 치운다. 속 재료가 정갈스럽기도 해라. 간도 어쩜 이렇게 심심하니 입에 딱 맞을까. 찬양대 단골 간식이었던 김밥, 또 김밥이야 질렸어, 했던 내가 김밥 애호가가 된 듯하다.
찬양의 밝은 기운이 고스란히 이어지던 찬양대 간식 시간. 난 원래 먹는 양이 작아 하며 김밥 몇 개를 다른 대원의 접시에 무작정 올려주는 분, 얼떨결에 받아 놓고 어머머 나만 살찌라고요? 하며 깔깔대는 웃음소리. 따끈하게 끓인 보리차와 커피를 컵에 따라 일일이 나눠주는 따뜻한 손길. 여자 대원들은 문 안쪽에서 맛난 수다를 떨고 남자 대원들은 문밖에서 덤덤히 대화를 주고받던 광경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떠 오른다.
머지않아 마스크 벗은 시원한 입으로 마음껏 소리 높이는 찬양대의 찬양 소리 울려 퍼질 것이고, 즐거운 김밥 시간은 다시 올 것이다. 그동안 이런저런 사연으로 우리 곁을 떠난 사람들, 돌고 도는 인연이라 다시 돌아온다 해도 또 다른 김밥의 순간이 될 것이다. 이 땅에서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 하늘나라로 떠난 대원도 있다.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시인의 시구절을 떠올려보며 노래하고 웃고 떠들던 매 순간이 꽃봉오리였음을 깨닫는다.
김밥은 소풍으로 이어지는 추억의 우리 맛이다. 혼자 먹어도 맛있고, 여럿이 먹으면 더 맛있다. 차 안에서 김밥을 먹을 때면 소풍의 들뜬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일본식 초밥 혹은 스시롤도 나름 맛있지만 한국식 김밥에서 느끼는 고향의 맛과는 다르다. 김을 살짝 구워 적당하게 고슬고슬한 밥을 올리고 각각 따로 볶거나 무친 속 재료를 나란히 눕혀 옆구리가 터지지 않게 잘 누르면서 만다. 간단한 듯하지만 둘이 먹자고 일을 벌이는 것이 번거로워 만들 엄두를 못 낸 지 꽤 되었다. 하루 지난 김밥은 밥알의 촉촉함과 속 재료의 신선도가 떨어져 한꺼번에 만들어 놓을 수도 없다.
교인들이 싱싱한 김밥을 먹게 하려면 김밥가게 사람들은 당일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김밥을 쌌을 것이다. 요즘은 김밥 만드는 과정이 많이 기계화되어 편해졌을 것 같다. 궁금증이 발동해 서치를 해 보았더니 김밥 밥 펴주는 기계, 김밥 말아주는 기계, 김밥 자르는 기계가 있는데 가정용부터 사업용까지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기계를 사용하면 많은 양을 짧은 시간에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기계가 닿으면 맛이 감할 것 같은 부분인, 속 재료를 장만하고 볶고 무치고 밥 위에 색깔이 어울리게 올려놓는 것은 사람 손으로 해야 한다. 하얀 밥 위에 속 재료를 가지런하게 올리는 영상 속의 손이 왜 그리 아름답던지, 내 어린 시절의 엄마 손 같다. 우리 김밥, 삶은 달걀과 칠성사이다 없이도 소풍 기분 낼 수 있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22년 4월 23일 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