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58
어제:
142
전체:
5,026,301

이달의 작가
2014.10.22 04:25

동백 아가씨

조회 수 421 추천 수 3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동백 아가씨*


이월란 (2014-10)


일본어가 철지난 유행처럼 입술에 발린, 왜색 짙은 그녀의 존재는 감추고 싶은 식민의 역사처럼 영원히 금지되었다. 온몸을 비틀던 고음은 불행이 살아온 창법이었을 것이다. 오래된 라디오가 꽃을 피울 때마다 뚝뚝 떨어지던 내 엄마.

불법 복제되던 목청은 흙의 노래가 되었다. 손톱이 빠지도록 기어오른 절벽마다 스스로 끊었다는 탯줄을 타고 원수 같은 핏덩이들이 태어났더란다. 불안한 지붕 아래 모로 누울 때마다 꽃에 물 주듯 안약처럼 눈에 눈물을 넣었더란다.

어린 수돗가에 노을이 고일 때면 밤새 생리를 앓은 동백꽃이 양동이 가득 피었더랬다. 수건을 덧씌운 뽀글 머리에서 짙게 풍기던 동백기름 냄새. 웃풍 시리던 유년의 윗목에서 경칩도 오기 전에 꿈틀 깨어나 기지개를 펴던, 그녀는 독한 꽃잎이었다.

나비 한 마리 없던 그녀의 북방한계선에선 겨울에도 꽃이 피었다. 청춘을 보내고 지아비를 보내고 하반신을 버리고도 세상은 걸어 다녀야 하는 곳이었다. 바다는 휠체어로 건넜는데 요단강은 뭘 타고 건넜을까.

칠순의 여가수가 오래된 음반처럼 빙빙 돌아가는 무대 위, 칠순에 꺾인 엄마 꽃이 운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 동백아가씨: 1964년도 가요, 한동안 왜색을 이유로 금지곡이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91 영문 수필 YOGA: Wake Up My Body 이월란 2010.12.14 417
390 솜눈 이월란 2008.05.07 418
389 눈(雪)이 무겁다 이월란 2008.12.26 418
388 견공 시리즈 둔갑술(견공시리즈 53) 이월란 2010.02.15 418
387 견공 시리즈 시선(견공시리즈 75) 이월란 2010.06.28 418
386 영문 수필 The Price of an Aging Society 이월란 2011.04.09 418
385 인사동 아리랑 이월란 2008.10.27 419
384 두부조림 이월란 2011.07.26 419
383 가나다라 천사 이월란 2013.05.24 419
382 새벽 이월란 2010.07.09 420
381 빛의 판례 이월란 2012.02.05 420
380 난청지대 이월란 2010.08.22 421
379 인형놀이 이월란 2010.12.14 421
» 동백 아가씨 이월란 2014.10.22 421
377 갈증 이월란 2010.06.07 422
376 견공 시리즈 種의 기원(견공시리즈 71) 이월란 2010.06.18 422
375 개그 이월란 2010.07.19 422
374 연옥 이월란 2010.08.22 422
373 반지 이월란 2010.09.06 422
372 너의 우주 이월란 2012.01.17 422
Board Pagination Prev 1 ... 59 60 61 62 63 64 65 66 67 68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