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의 약속
홍인숙(Grace)
이 가을, 또 얼마나 짙은 가슴앓이를 할 것인가. 여름이 한창일 때 벌써 가을이 다가옴을 두려워했습니다. 팔랑이는 잎새 사이로 스치는 햇살에도 눈물이 차오르는 내 연약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밤잠 설치고 나선 거리엔 우수수 발길에 차이는 낙엽소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어느새 가을 속에 성큼 빠져든 나를 보았습니다.
꽃이 피었다 지는 것과 피지 않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사람이 태어났다 가는 것과 태어나지 않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내가 태어나 철부지 소녀가 되고,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며 마른 대지 위로 이룬 한 생애 흔적을 그 누가 기억할까요. 그러나 어쩌지요. 지금 난 이렇게 한 시대를 공존하는 사람들과 어깨를 마주하고 세상 한 가운데 서 있는 것을. 가족이라, 친구라 이름 지어진 관계 속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남은 삶의 여백을 채우고 있는 것을.
왜 꽃이 피고 지는가. 왜 사람이 나고 죽는가 묻지는 않겠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여려지는 햇살 사이로 스쳐 지나는 바람과, 소리 없이 낙화하는 꽃잎들을 바라보며, 침묵 속에 사라지는 것일지라도 곧 다시 태어남의 약속임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는 계절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은 우릴 불러 쉬게 하는데
우리의 따뜻한 쉼터는 어딘가
그 물음과 함께 말없이 눈을 감는다
그래도 더 이상 작아지기 전에
아직 자신이 남에게 유용한 존재라고
세상을 향해 소리치며
이루려는 의지와 희망을 갖고
늦기 전에 새길을 열어보지 않겠소
세상은 극도로 혼란스럽고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너무도 많고
우리가 공들여 세운 세상
허무한 모래성으로 변해가는 걸 보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린 지금 어떤 지혜가 필요하지 않겠소
그러니 우리 나란히 걸으며 달리며
다 함께 하는 세상을
형제여 보듬고 멀리 내다보며
고귀한 낭비를 마다않고
세찬 홍수처럼
더러운 것 모두 흘려버리고
저 사막을 비옥하게 만들지 않겠소.
세월에 기대어 나를 돌아보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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