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대화
홍인숙 (Grace Hong)
아름다운 싼타쿠르즈 바닷가의 레스트랑 '질다'에서 동인 모임이 있었다.
레스트랑 안에는 90세를 바라보는 주인 질다 가족의 오래된 흑백사진들이 벽마다 미소 지으며 질기고 따스한 그녀의 가족사를 말해 주었다.
레스트랑을 가득 메운 손님들은 흑백사진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과 같이, 과거와 현재가 한 점으로 만나 또 다른 과거 속으로 휩쓸리지 않기 위해 힘을 뭉쳐기라도 하듯, 열심히 먹고 열심히 이야기를 쏟아냈다.
여덟 명의 한국 여인들도 창 밖으로 노을이 물든 파도를 바라보며 시와, 인생에 대하여 열심히 이야기하고, 사이사이 재빠른 솜씨로 포크와 나이프를 놀려 샐몬 스테이크, 킹 크랩, 크램챠우더, 해물 파스타 등을 수시로 입으로 운반하여 미각까지 충족시켜 주었다.
참 좋았다. 음악도 좋았고, 분위기도 좋았다.
특히 낮동안 찬란했던 태양을 끌어안은 석양의 바다는 가슴 깊은 곳에 움추리고 있는 작은 소리까지도 토해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우리들은 헤어지는 순간까지 백년지기가 될 것을 약속이나 하듯 떠들썩하게 돌아가며 안아주고 사랑을 나누었다. 하지만, 자동차에 올라타 시동이 걸리는 소리를 듣는 순간, 예정된 하늘의 어둠과 함께 왈칵 공허감이 엄습해왔다. 여럿에서 떨어져 나온 외로움은 혼자였을 때 받는 외로움하고는 또 다른 의미의 고독으로 가슴에 찬바람을 일군다.
나는 여럿의 시끌법썩한 잡담보다는 나 홀로 스스로를 향한 대화나, 마주보며 도란도란 나누는 조촐한 대화를 좋아한다. 말을 많이 주고받은 날은 마음은 충만하나 정신에는 하얀 바람이 인다.
만찬 다음날 찾아오는 공복감이랄까..
주고받은 대화의 분량만큼 영혼의 무게가 덜어져 나간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바다가 파도를 쏟아내듯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요란스런 만남도 나의 생활에 활력소가 되리라 생각한다.
문우들과 기탄 없는 대화로 오랜만에 하루를 행복하게 보낸 날, 그 만큼 혼자 남은 외로움도 컸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