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기쁨
홍인숙(Grace)
둘째 아이가, 작년부터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며 제 용돈을 벌어 쓰더니, 올 여름방학을 맞이하여서는 본격적인 돈벌이에 나섰다. 11학년이라 대학 진학 준비에 신경을 써야 할 때에 밤낮 없이 일에만 매달리니 나로서는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고, 자주 아이와 마찰이 일어났다.
남편과 함께 아이가 일하는 레스트랑에 들러보았다. 우리는 아이가 단순히 웨이터일 만 하는 줄 알았다. 아이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손님 접대에 음식 서브, 카운터의 계산 등, 긴 시간을 쉬지 않고 바삐 뛰어다니며 일을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엔 그 큰 식당 바닥을 청소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니 아무리 제 용돈벌이라지만 마음이 착잡하여졌다.
많은 아이들이 방학이라 여행도 다니고 놀 때에 그 아이의 땀흘리는 노동의 모습을 본 후로는, 일 마치고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예전처럼 '방 치워라!' '공부 해라!' 잔소리를 할 수 없었다.
일요일이었다. 온 가족이 교회에 참석하느라 조반을 서두를 때에 아이가 일하는 레스트랑에서 전화가 왔다. 연휴로 종업원들이 모두 휴가를 가 일할 사람이 한 사람도 안 나왔다는 것이다. 잠시 주저하던 아이는 곧 가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태어난 후로 지금껏 주일 성수는 좀처럼 빠지지 않던 아이가 교회 대신 일을 간다니 신경이 예민해진 나는 아이를 꾸짖었다. 아이는 예배가 중요한 것도 알지만 일할 사람이 한사람도 없는 그 식당에서, 지금 자기를 필요로 할 때 도와주어야 한다며 한번만 이해해 달라고 사정하였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헌금을 부탁하였다. 액수가 50여불 이나 되었다. 십일조였다.
비로소 아이가 돈을 벌기 시작하였을 때부터 아무도 모르게 십일조 생활을 해 온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야 매일 아이의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성경책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그 작은 가슴 깊숙이 신앙심이 예쁘게 꽃핀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번 돈으로 너무 알이 작아 미안하다면서 진주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를 어머니날 선물로 주었을 때, 생일이 같은 부모를 위해 고급 레스트랑을 예약하여, 어른도 망설이는 큰돈으로 남편과 나에게 식사를 대접했을 때, 난 성숙하게 자란 아이의 모습을 보고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였다.
그동안 아이에게 매일 SAT성적으로 다그치고, 일류 대학을 고집한 내 모습이 너무 세속적이어서 부끄러워졌다. 아이들의 성적이 무슨 소용인가. 일류 대학이 아니면 어떤가. 그저 반듯하고 건강하게 자라 주어서 대견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나름대로 부모를 공경하려는 그 마음이 기특하고 감사하다.
아이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작은 것에서 기쁨과 감사를 돌리니 더욱 아이가 사랑스럽다.
자식은 나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귀한 인격체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 일정 기간을 나는 욕심 없이 사랑으로 양육하고 아이의 앞길에 하나님의 은총이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1999년 8월 크리스챤 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