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테와 눈물 / 홍인숙(Grace)
살아갈수록 눈물이 많아지는 것은 왜일까.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 그 청명함에 눈물이 고이고, 오월의 잔잔한 실바람에도 가슴이 아려온다.
겨우내 홀로 있던 고목의 등걸을 타고 쭉쭉 뻗은 가지위로 촘촘히 맺힌 과일열매의 풋풋함이 대견해 가슴이 벅차 오르고, 햇살 아래 미세한 입자처럼 떠다니는 날벌레에도 우리의 인생을 보는 것 같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낮동안 화려했던 태양이 제 몸을 붉게 태우며 아주 조금씩 사라질 시간, 그 낙조의 아름다움으로 저며오는 가슴. 사랑하는 가족들이 곤히 잠든 모습을 보며 그 고른 숨결에 맺히는 감사의 눈물. 아름다운 그림에도, 아름다운 선율에도, TV를 볼 때나, 책을 읽을 때나, 순간순간 찾아드는 가슴 뜨거움.
이렇게 사랑스러움에도, 아픔에도, 기쁨에도 맥없이 찾아드는 미묘한 설움의 덩이,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눈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기쁨, 고뇌, 좌절의 순간들이 분출한 감정의 잔재가 가슴속에 별처럼 차곡차곡 쌓였다가 어느 순간 하나씩 눈물로 반짝이며 나타나는 것 같다. 그것을 연륜이라고 하는 것일까.
세월 따라 사람의 취향과 감정이 변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나도 한 때는 어린 나이에 철없이 인생을 달관한 것처럼 분별없는 허상에 매달리기도 하였다. 젊었던 날 부끄럼 없이 쏟아내던 자아, 그 사고의 초점이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제는 보다 단순하고 편안한 것을, 픽션보다는 넌픽션을, 그리고 세속적인 즐거움보다는 영혼에 와 닿는 것들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지금까지 무심했던 작은 사물에 애정이 가고, 그것들이 가슴으로 다가와 뜨거운 눈물이 되는 것을 볼 때, 스스로 나이테가 하나 둘 늘어남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만 주신 감정표현의 능력인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글썽여지는 눈물. 슬픔의 눈물보다는 기쁨의 눈물을, 기쁨의 눈물보다는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싶다.
(1999년 한국일보 / 여성의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