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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탈의 행복

by 홍인숙(Grace) posted Dec 0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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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시대> 기획연재 / 미국에서 쓰는 한국문학 (4)            

 

                                 

                               작은 일탈의 행복

                                             

                                                                홍인숙(Grace)

 

 

  가끔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가. 자문해 본다. 나이 들수록 가족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이 행복하다. 요즘 들어 친구들과 자주 만나게 된다. 그렇다고 만나서 특별한 모임을 갖거나, 특별한 대화 거리가 있는 건 아니다. 대화는 주로 건강 지킴에 대한 이야기와 세상 어디에도 없이 예쁜 손자, 손녀들 자랑의 반복, 그리고 세계 각국으로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나는 건강을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하거나, 보조 식품을 챙겨 먹지 않는다. 아직 손주도 없어 손주 자랑도 못하고, 여행도 잘 다니지 않아 이야기 거리가 도통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반겨주는 편안하고 좋은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은 늘 기쁨으로 기다려진다.

  지난해 추수감사절에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다녀왔다. 미국에서의 추수감사절은 한국의 추석처럼 큰 명절 중 하나다. 집을 떠나있던 아이들이 부모를 찾아오고, 가까운 친척들도 함께 모여 하루 종일 오븐에서 구워낸 칠면조 고기와, 호박 파이를 곁들인 풍성한 저녁식탁에 둘러앉아 가족의 따뜻한 정을 나누는 날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추수감사절 며칠 전부터 집안을 장식하고 온 가족이 명절을 즐겼으나 어느덧 아이들이 장성하여 집을 떠나니 언제부턴가 부모의 생활 패턴이 아이들에 의해 점차로 변하게 되었다.

  우리 집은 아이들이 일로 바빠 집에 다녀 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남편과 둘이 쓸쓸하게 추수감사절을 지낼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우리와 형편이 같은 친구 부부가 하루 코스의 여행을 제의하여 흔쾌히 따라나섰다. 내겐 당일치기도 설레는 여행이라 전날부터 들뜬 마음에 차에서 먹을 간식거리를 준비하고 당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향해 떠났다. 야행성인 내게 이른 아침의 출발이란 대단한 결정이었지만 작은 일탈을 위해 새벽 단잠을 기꺼이 포기하고 따라 나선 것이다.

  역시 한 번씩 집을 떠나 대자연으로 달려가 보는 것은 설레고 상쾌한 일이다. 연휴인데도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프리웨이는 한산했고, 드넓은 하늘과 광활한 대지는 아침햇살로 눈이 부셨다. 가는 길에 맥도널드에서 머핀과 커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며 낯선 곳, 낯선 사람들 틈에서 잠시 기분 좋은 쉼을 갖기도 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캘리포니아 동부에 있는 씨에라네바다 산맥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1984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록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국립공원 중 하나로 웅장하고 수려한 자연의 절경이 뛰어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늦가을 단풍만 예상하고 다섯 시간이 넘게 달려간 요세미티는 언제 눈이 왔는지 뜻밖에 초입부터 장대한 설경을 안고 있었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환성을 올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사는 북가주(Northern California)에는 눈이 없기에 어쩌다 레잌타호나, 요세미티를 가야 눈을 보는데 그 확률도 희박하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나와 한껏 들뜬 마음으로 카메라에 설경을 담느라 바빴다.

  거대하고 드넓은 공원, 깊은 계곡과 웅장한 바위, 바위를 타고 내리는 힘찬 폭포는 요세미티의 장엄한 위상을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하늘 높이 치솟은 수목들은 가지마다, 잎새마다 쌓인 눈으로 반짝거렸고, 한 번씩 바람자락이 맑은 햇살을 타고 휘감을 때면 하얀 눈가루들이 이슬비처럼, 때론 꽃잎처럼 하늘거리며 우아하게 흩날렸다.

  고요하면서도 울창한 숲 속에 머물다보니 마치 헨리 데빗 소로우가 자연 속에 통나무집을 짓고 생활한 ‘윌든’ 호숫가 아름다운 숲속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인생을 내 뜻대로 살아보고 싶어 숲으로 갔다’는 그의 음성이 고요 속에서 맑게 울려왔다.

 

  나는 여행을 자주 못 다니는 편이다. 심한 수면장애로 집에서도 잠을 못 자는데 여행을 떠나면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하고, 비몽사몽으로 바쁜 일정을 따라다니다 보면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함께 하는 일행에게도 미안한 마음으로 될 수 있는 대로 여행, 특히 긴 여행은 더더욱이나 피하게 된다.

  그럼에도 몇 년 전에 친구들의 성화로 동유럽을 함께 여행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슬로베니아에서 어릴 적 고국에서 함박눈을 펑펑 맞을 때와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블레드 호수와, 블레드 성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그곳에서 하늘이 안보이게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열 명의 어른들은 어린아이들처럼 환성을 지르고 기뻐했다. 그 때의 순백의 설경, 신비스럽도록 아름다운 슬로베니아를 잊을 수 없었는데, 비록 그때처럼 쏟아져 내리는 함박눈은 아니지만 몇 년 만에 다시 보는 요세미티의 황홀한 설경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울창한 수목 사이의 카페테리아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노인부터 어린아이들까지 온 가족이 함께 온 사람들도 있고, 우리처럼 부부끼리 온 사람들도 많았다. 모두 조용조용 가족들과 담소하며 밖의 정경만큼이나 따뜻한 식사를 하면서, 서로 눈이라도 마주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Happy Thanksgving!’하며 손을 흔들어 인사를 나눴다.
비록 피부색이 다르고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기쁨의 눈을 맞추며 환호하는 순간, 그것이 인간본연의 순수함이 아니면 무엇이랴. 우리들에겐 고단한 삶의 부스러기들은 모두 사라졌고 오직 자연 앞에 마주선 행복과 기쁨뿐이었다.

  오랜만에 자유함을 느낀 자연에서 하루를 보낸 우리들은 다시 다섯 시간이 넘는 긴 드라이브를 하며, 70년대 우리의 우상들의 감미로운 팝송을 듣고 흥겹게 따라 불렀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추억 여행 또한 즐거운 것. 우리들의 빛나던 이십대의 청춘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 시절을 추억하며 돌아오는 길에는 어느덧 어둑어둑해지는 하늘가로 짙은 노을이 듬성듬성 피어올랐다.

  요즘 세계적으로 시국이 어수선하다. 미국은 총기 구입이 쉬워 날마다 총기 사고가 일어나고, 흑백갈등으로 인한 흑인 폭동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특히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ISIS의 종교전쟁, 무분별하고, 무차별한 끔찍한 테러로, 언제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를 불안한 가운데 있다.

  내가 사는 실리콘밸리에는 구글, 애플, 페이스 북, 본사가 있고, 또 한국의 삼성지사 등 많은 중요 회사가 있다. 이렇듯 세계로 향하는 첨단기술의 메카가 한 곳에 모여 있어 테러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염려가 있다.
언제부터 세상이 이렇게 어수선해 졌는가. 인성이 극도의 이기주의로 변하고, 사람의 정보다 인명을 가벼이 여기는 풍조가 서글프다.

  탈무드에 삶의 균형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인생이란 균형이다 인간은 희로애락 중에 어느 한 가지 감정에만 빠져있어선 안 된다. 삶에도 균형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정서적으로 볼 때 어느 한쪽으로만 무게가 실리면 사고의 기능이 파괴되는 것이 아닐까.
요즘 현대인들이 감정의 불균형으로 사건 사고가 그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분노에 집착하다보면 분노조절 장애로 증오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극단의 우울증으로 치우치다보면 스스로 목숨도 포기하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아름다움느끼고 보는 것은 정서적 휴식이다. 돌아보면 살아볼만한 세상, 충분히 아름답고, 따뜻한 세상이다. 혹시라도 스트레스가 쌓인다거나 피로가 누적되어 스스로 감정의 불균형을 느낀다면, 과감히 일어나 짧은 여정이라도 잠시의 일탈로 기분을 전환시켜 삶의 균형을 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사람들이 좀 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자연을 즐기고, 서로 정을 나누며 자족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아주 작은 일에도 느끼는 평안과 행복 그 또한 삶에 값진 부분이 되기 때문이다.

  잠시의 일탈에서 얻은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설경 사진을 친구들과 나누며 우리들은 또다시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하루의 행복이 소중하고,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사람이기를 바라며 나이 들어 만나는 친구들과 계속 건강한 만남,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흘러간 것은 모두 소중하고 아름답다. 언제일까 먼 훗날, 나는 추수감사절의 눈 덮인 요세미티를 추억하며 깊은 그리움에 잠길 것이리라.

 

          <수필시대> 통권 69호  7/8-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