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단상 / 홍인숙(Grace)
길을 걸으면, 예수님의 두 제자가 걷던 엠마오로 향하는 '길'이 떠오르고,
떠돌이 광대 잠파노를 따라다니던 백치소녀 젤소미나의 서러움이 잠긴 '길'도 떠오르고,
로버트 프로스트가 아침마다 바라보던 '두 갈래의 길'도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길이 바로 삶인 것 같습니다.
길을 가다 한번씩 멈춰 서 지나온 길을 돌아봅니다. 내가 흘린 발자국이 무수합니다.
발 빠르게 지나온 힘찬 흔적도 있고,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걸어온 흔적도 있습니다.
되돌아 가고 싶어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맴돈 흔적도있습니다.
길의 끝이 어디인지, 언제쯤 그 막다른 길에 도달할 건지, 그 알 수 없는 길을
첫눈만 뜨면 달려가는 것은 아침마다 우리에게 새로운 길이 하나씩 열리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돌아보면 언제나 길은 한 길이었습니다.
결국은 한 길에서 오랜 여정 끝에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 영원한 안식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겠지요.
그 동그란 삶의 끝을 점점 가깝게 바라보며 오늘도 걷고 있습니다.
슬프지만 슬프지 않게, 두렵지만 두렵지 않게, 아련한 희망을 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