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소한 삶이 주는 행복 / 홍인숙(Grace)
가을이면 빨간 단풍나무가 울창한 옆집에는, 리타이어한 부부가, 몸도 성치 않은 구십의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 주중에는 손녀들 베비시터하느라 아이들의 소리가 그치지 않고, 주말이면 출가한 자식들이 찾아들어, 가족들간의 화목한 모습이 꼭 우리네 한국사람 사는 모습처럼 정겹다.
매우 검소한 그들은 20년 전, 내가 이사왔을 때 타던 중고차들을 지금도 타고 있고, 집안 살림살이도 새로 장만한 것이 별로 없다. 큰 이층집을 페이오프하고 노년을 욕심 없이 편안하게 사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운다.
며칠 전에는 그 부부가 우리 아이에게 TV 셋트를 주었다. 25년 된 것이지만 작년에 브라운관을 갈았다며 몇 년 훌륭히 쓸 것이란다. 공연히 자리만 차지하면 어쩌나 생각되면서도, 아이에게도 검소하게 사는 그들의 모습이 좋은 교육이 될 것 같아 감사히 받게 했다. 그들의 검소함과, 끈끈한 가족의 정, 이웃에게 보내는 정다운 모습을 보며 나 스스로를 반성해 본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너무 물질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허례허식으로 과소비를 하고, 필요도 없는 물건을 사는 경우가 있지는 않은가. 허례허식은 허영과 낭비만 불러오고, 사용이 목적이 아닌, 전시를 목적으로 장만한 물건은 이미 그것의 용도 가치를 잃어 우리를 만족시켜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최선의 삶이란 꼭 물질의 축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적 추구와 물질적 추구가 적당한 밸런스를 이루어야만 성숙한 삶을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작가 토마스 아 켐피스는 '행복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고, 세속적인 물건을 풍부하게 갖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만족하는데 있다. 내부로부터 이는 욕망을 얼마나 슬기롭게 제어하고 만족을 느끼는 가에 의해서 행복의 느낌은 결정된다.'고 하였다.
가족끼리 화목하고, 알맞게 벌어 알뜰히 사는 것이 인생을 사는 재미이고 지혜가 아닐까. 무소유의 자유함, 작은 일에 감사로 일관된 삶의 자세를 갖고, 나도 담장 너머 이웃처럼 평화로운 노년을 맞고 싶다.
오늘도 밝은 웃음과 함께 건네준 노부부의 싱그러운 아침인사로 행복한 하루를 열어 본다.
(1999년 한국일보 / 여성의 창 )
Stay t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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