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 드브로브닉 성벽에서
홍인숙(Grace)
회색의 거리. 끝없이 치솟은 길과 길, 하늘 닿은 성곽 정점에서 신기루처럼 서 있는 야자나무의 첫잎과 만났다. 아직도 전흔이 남아 공간적 이질감에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까마득히 발아래 전설의 도시, 벅찬 흔적을 품고 있는 숭고한 거리에는 슬픈 사연들이 바람으로 흩날리고, 나도 작은 점 하나로 차가운 성벽 비바람 끝에 매달렸다.
흑백 필름의 전설처럼, 찬란했던 순간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 미로에 서서 과거와 현재를 마주한 방랑객들. 떠나간 삶들은 무수한 발자국과, 성벽을 타고 내리는 빗물이 되어 무심히 흘러도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역사는 말없이 흐르고, 나 또한 *드브로브닉 비 오는 거리에서 유구하고 음습한 흔적의 원천 속으로 첨벙 뛰어들었을 뿐.
* 드브로브닉 - 크로아티아 남부 아드리아해 연안의 도시
11월이 가면 마지막 12월이 달력의 전면에 나서서 한해를 이끌어가며 마무리 하리
시간도 인연처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니 덧없다 생각하면 덧없고 의미가 있다
생각하면 의미가 있으니 세월 속에 잠겨 어제를 잊고 오늘을 살다보면
성급하지만은 않은 내일이 있네 11월이 가면 영하의 날씨 속에 눈은 겨울의 상징물이 되어 휘날릴 것이고 얼음은 짙은 밤을 가득 메운 어둠처럼 바늘 하나 꽂을 틈도 없이 꽁꽁 얼어붙어 냉정함의 극치를 말하리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결코 마르지 않는 감성으로 영혼 속을 흘러갈 우리들의 마음 11월이 가면 따스한 사람이 그리워지는 12월이 되리 아름다운 추억이 억새처럼 하늘거리는 12월엔 그대의 존재가 세월을 비껴간 바람 한줄기처럼 영혼의 강물이 되어 흐르리.( 김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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