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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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양기(陽氣)가 입으로만 몰렸다

2017.05.01 22:08

지/필/묵 조회 수: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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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프로그래시브 록 그룹 King Crimson의 스매쉬 힛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앨범 표지)



양기(陽氣)가 입으로만 몰렸다!”


말이 많은 사람을 일컫는다.

터무니 없이 자기 주장만을 강조하는 사람에게도 통용된다.


시대 탓인가!


목소리 큰 사람과 화술(話術)에 능통한 달변(?)가들이 허명(虛名)을 날리는 세상이다.

허명으로 몸 거죽을 살찌우는 대상은 비단 이들 뿐만이 아니다.

시정(市井)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도 이와 같다.


예를 들어보자.


맥 다방(맥도날드 빵 집)에 옹기 종기 몰려 앉은 한인들이 본국 정치에 대해 관심을 드러냈다.

열흘 남짓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서다. 

헌데, 대화의 범위가 깊어지고 확대될 수록 정론은 없고 고성만 오간다.

감정이 격해 지면서 급기야는 삿대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의 주장이 밀리면 망신이라는 천착증(穿鑿症)의 발로다.


대화는 경청하는 자세로부터 출발한다.

그러고는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개진하는 것이다.

화자의 견해가 다르다 해서 자기 주장만 내세우며 목소리를 키우는 것은 혼자 떠드는 독백일 뿐이다.


대화는 이성의 혀로 하는 것이지, 결코 감정의 화살로 쏘 듯 하는 것이 아니다.


서정적인 노랫 말과 아름다운 하모니로 금세기 최고의 듀엣으로 군림한 사이먼과 가펑클은 노래를 통해 말했다.

“사람들은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하고 / 듣는 체 하지만 실제로는 경청 하지도 않으며(People talking without speaking,
People hearing without listening,)…..”


주역(周易)에서 영혼은 양(陽)이다.


영혼에 양기가 넘치는 사람들 상당수는 천재다.

대왕 세종, 뉴턴, 레오나드 다 빈치, 니체, 아인 슈타인, 히틀러, 스탈린 등.


헌데, 코리아 타운내 장삼이사 가운데는 히틀러 또는 스탈린처럼 양기(陽氣) 가 입으로만 몰린 이들이 허다하다.

오직 자신의 말만 진리라고 여긴다.

덧붙여 자신의 이름 석자를 거들 먹 거리며 세(勢)를 과시하려 든다.   

이들은 어느 장소 또는 모임에서 건 목소리를 드높이며 억지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어느 미국인이 우연히 올림픽 가(街)에 위치한 한인 식당에 들어섰다.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한 뒤 음료수를 마시는 순간 주변 식탁에서 고성이 오가는 것을 목격했다.

화들짝 놀란 미국인은 이들이 싸움을 하는 것으로 오인하고 내심 걱정하는 눈치 였다.

헌데, 알고 보니 코리안들의 고성이 감정 싸움이 아닌 대화였다는 사실에 씁쓸해 했다는 후일담이다.


부부간의 대화에서도 궤도를 이탈한 불협화음이 허다하다.

상대의 말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않은 채 막무가내 핀잔 만을 일삼는다.

툭하면 “당신이 뭘 안다고 나서나?”하며 무시해 버린다.

이는 전형적인 마초(Macho)근성의 발로이며 똥녀들의 막무가내 식 히스테리다. 


부드럽고 반듯한 대화를 위해서는 우선 경청하는 자세부터 취해야 한다.

그러고는 자신에게 말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비로소 차분한 어조로 견해를 밝히는 것이 진중한 매너다.

화자(話者)가 대화의 서두를 전개하기도 전에 불쑥 끼어들어 자기 주장을 펴는 것은 꼴불견이다.


한인들의 목소리가 크고 자기 주장이 강한 이유는 ‘다혈질(多血質)’ 기질 때문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허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대화는 상대가 있는 것이다.

전쟁을 하다 가도, 협상 테이블에서 논리 정연한 대화로 평화를 얻어내는가 하면, 상대를 잘 설득해 천 냥 빚도 탕감 받는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찾은 초등학생들이 국회의원들의 대정부 질의 광경을 바라보며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이크로 폰을 손에 쥔 국회의원이 큰소리로 막말을 해대며 예사로 삿대질을 했기 때문이다.

이치에 합당한 대화로 당면한 문제를 지적하기 보다는, 권위를 내세워 꾸짖는 듯 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같은 해프닝을 목격한 초등학생들의 기억속에는 ‘국회의원들은 싸움꾼’이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각인돼 있음은 물론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 벗과 이웃, 심지어 어깨를 스치고 지나는 이들과의 대화에서 먼저 할 일은 자신의 귀를 활짝 열고 화자의 말을 차분하게 듣는 것이다.


상대의 말이 억지 주장이거나 파열음이라 할지라도 진중하게 경청하는 자세가 옳다.

그런 다음 정확하고 간략한 논변으로 상대를 설득하고 이해하게 만들어야 한다.


진정한 대화는 소화가 잘되는 음식과 같아야 한다.


(신문 칼럼)

이산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