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주택가 앞 인도(人道)를 점거한 노숙 텐트 촌 ►사진 출처:Korea Daily Times>
천사의 도시 LA.
6가(街: 6th street)와 마리포사(Mariposa)교차로 내 인도(人道)를 점거한 홈리스 텐트촌.
(이 지역 주변에는 코리안 비지니스 업체가 즐비하다)
이곳을 지나던 두 할머니가 발걸음을 멈췄다.
코리안이었다.
나이는 대략 60대 후반으로 추정됐다.
이들이 가던 길을 멈춘 이유는 이랬다.
홈리스들이 온갖 잡동사니를 인도(人道)에 방치,통행을 방해했기 때문 였다.
흉물스런 텐트 주변에는 3명의 남자 홈리스와 백인계 여성 홈리스가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사내들은 모두 웃통을 벗은 채였다.
홈리스 가운데 둘은 흑인이었다.
50대로 보였다.
나머지 한 명은 히스패닉계였다.
30대 초반으로 추정됐다.
사내의 머리는 봉두난발(蓬頭亂髮)이었다.
여자 홈리스는 40대로 보였다.
거구였다.
금발(金髮)이었고, 허벅지 만한 팔뚝과 아래로 처진 볼품없는 젖가슴을 반쯤 드러내고 있었다.
여자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산만한 데다 지저분했다.
끊임없이 돼지 껍데기 튀김 과자를 우물거리고 있는 여자 홈리스는 두 코리안 할머니를 향해 번갈아 가며 시선을 주었다.
걸음을 멈춘 두 할머니 가운데 챙이 넓은 벙거지 모자(불멸의 무비스타 오드리 햅번이 즐겨 쓴 버킷 햇 )를 쓴 할머니가 홈리스들을 째리며 비아냥 했다. 거침없는 영어였다.
“년놈들아.처먹고 똥만 싸냐? 길바닥에 널브러진 쓰레기들 좀 치워. 그렇게 게을러 터지니 백날 빌어먹는 홈리스 신세가 아니냐!”
순간,더러운 땟국물이 밴 청바지를 엉덩이에 걸친 흑인 홈리스가 두 손바닥을 비비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고는 두 할머니 곁에 바짝 다가서며 말했다.
“핼로, 핼로. 뷰디플 레이디. 방금 뭐라 하셨어요? 우리더러 ‘빌어 처먹는다’고 했나요? 씨이엣!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본래 태어날 때부터 홈리스가 따로 있는게 아니죠. 사회 시스템이 홈리스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요. 모든 것이 빌어먹을 정부 탓이다 이겁니다.”
홈리스가 마치 아리스토 텔레스처럼 주절거렸다.
오드리 햅번 모자 곁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또 다른 할머니가 끼어들었다.
할머니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피부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음각(陰刻)돼 있었으나 고왔다.
고혹적인 눈은 총기(聰氣)를 더했다.
생김새는 70년대~80년대를 풍미한 영화배우 문희를 오버랩 시켰다.
구획이 분명한 이목구비는 신이 내린 선물 같았다.
아름다운 형상은 비단 얼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몸매도 일품이었다.
키는 대략 170센티미터로 여겨졌다.
흰색 폴로 티셔츠에 단단하게 솟은 젖가슴은 나이를 무색케 했다.
검정색 레깅스에 부풀어 오른 봉긋한 엉덩이와 튼실한 허벅지, 그리고
꼿꼿한 허리도 시선을 끌었다.
그의 단단한 몸매는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음을 반증(反證)했다.
만약 그대가 할머니와 마주친다면 순식간에 사랑을 느낄 것이다.
할머니라 해서 모두가 같은 류(類)의 할머니가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60대~70대 할머니들이 30대 처녀들을 방불케 하는 몸매를 자랑한다(물론 LA 코리아 타운에선 매우 희귀한 경우지만).
흑인 홈리스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한 아름다운 할머니도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이눔아! 내가 그 이유를 말해주겠다. 네가 지금 홈리스 신세인 것은 자업자득이란다. 내 눔이 자업자득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
“…..?”
“네 눔 스스로가 홈리스로 전락했다는 뜻이다.”
“…..?”
“모르긴 해도 네 눔의 부모와 형재 자매들은 먹고 살기 위해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네눔은 빈둥거리며 술이나 처먹고 대마초나 때리면서 허송 세월을 보냈을 거야. 내 말이 틀렸냐?”
“……?”
“그 결과 현재의 꼬락서니가 바로 네눔의 자화상인게야. 언더스탠!.”
피골이 상접(相接)한 두 흑인과 봉두난발 히스패닉, 그리고 금발의 여자 홈리스는 불시에 일격을 당한 것처럼 황망한 표정들 이었다.
이들은 눈알을 부지런히 좌우로 굴리며 할머니를 바라볼 뿐이었다.
홈리스들이 길바닥에 가래침을 캭 내뱉으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오드리 햅번 모자 할머니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보시게. 신사 숙녀분들.그렇다 해서 기가 죽을 필요는 없어요. 이제 그대들이 해야할 일은 저 흉물스런 텐트에서 벗어나는 일이야. 다시 말해 일을 하라는 거지. 일을 해서 돈을 모으라는 거야. 지금 LA는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어요. 일할 사람이 부족해 난리야. 특히 공사 현장은 더욱 그래. 막일을 할 인부는 특별히 인건비를 더 쳐준다는구만. 때문에 몸만 튼튼하면 돈은 얼마던지 벌 수 있다니까. 하루 일당이 얼마라더라…..그래 150달러야. 그대들에겐 엄청난 돈이지. 안 그런가? 그리고 아가씨도 일자리를 구해. 딴 생각은 집어 치우고 일자를 찾아봐. 만약 원한다면 이 할미가 알아봐 줄까? 내 말 농담이 아냐.”
여기까지 말문을 튼 할머니가 정색한 표정으로 홈리스들의 얼굴을 훔쳤다.
그러자 구질구질한 청바지를 엉덩이에 걸친 흑인 홈리스가 못마땅한 얼굴로 빈정댔다.
“뷰디플 레이디. 충고는 고마워. 하지만 본질은 그게 아냐. 우린 지금 이대로가 좋아. 미쳤다고 이 더위에 노가다를 해? 그건 돈에 환장한 코리안들이나 하는 짓이라구. 원래 코리안들은 돈이라면 지옥도 마다 않고 뛰어드는 수전노(守錢奴)들 아닌가! 아무튼 우리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고상한 척 하지마.다시 말하지만 우린 지금 이대로 만족해. 완전 자유야.”
“볼솃 맨!”
오드리 햅번 모자 할머니가 어처구니가 없다며 말을 비틀었다.
하지만 홈리스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주절거렸다.
“배가 고프면 밥먹고, 졸리면 느긋하게 한 잠 때리고, 뿐만 아냐. 이곳에선 마음만 먹으면 ‘붕가붕가’도 즐길 수 있어.”
“붕가붕가…그게 뭐냐?”
오드리 햅번 모자 할머니가 의아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이번에는 봉두난발 히스패닉이 낄낄대며 말했다.
“에이, 알면서 왜 그려서. 그거 있잖아요.남녀궁합!”
순간, 아름다운 할머니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빌어 처먹을 중생들!”
동시에 홈리스들도 박장대소(拍掌大笑)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팔뚝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형상을 문신한 흑인 홈리스가 턱으로 아름다운 할머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뷰디플 레이디. 입은 거친데 모습은 아주 섹시해. 같고 싶네.”
놈의 수작을 곁눈질 하고 있던 오드리 햅번 모자 할머니가 두 눈에 쌍심지를 켰다..
“꼴에 남자랍시구….꼬부랑 할미를 보고도 조시 꼴리냐? 개만도 못한 눔!”
할머니의 거친 육두문자에도 홈리스들은 오히려 재미 있다는 듯 히죽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두 할머니는 홈리스들과 헤어지기 직전 어깨에 맨 바랑을 풀었다.
그리고 김밥 두 개와 식혜, 인절미 한 팩을 꺼내 홈리스들에게 건넸다.
아름다운 할머니가 말했다.
“옛다. 가진 것이 이게 전부다.부족한대로 나눠 먹거라.”
봉두난발 히스패닉이 재빨리 김밥을 낚아채며 말했다.
“뷰디플 레이디. 돈 있으면 5달러만 줘요.”
“5달러는 어디에 쓰려고?”
오드리 햅번 모자 할머니였다.
봉두난발이 말했다.
“오랜만에 회포를 풀려고요.”
“뭐라구, 몸을 푼다구….어디서 어떻게?”
이번에는 청바지를 엉덩이에 걸친 흑인 홈리스가 혀를 내밀며 말했다.
“에이. 잘 알면서….. 이곳에서 5달러만 주면 저 여자(턱으로 백인 여성을 가리킴)와 붕가붕가를 즐길 수 있다니까요.”
“어디에서 붕가붕가를 하지?”
“텐트 안에서!’
홈리스 사내의 야바위 수작을 귀담은 아름다운 할머니가 찬바람을 일으키며 파열음을 냈다.
“이런 빌어 처먹을 눔! 정신 머리가 그 지경이니 맨 날 땅바닥에 널브러진 음식 찌꺼기나 주워먹는 팔자야. 조시 썩어 문드러질 눔아.”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할머니의 입에서 거침없는 욕설이 튀자 홈리스들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한편, 할머니들은 처음엔 난색 했다.
먹을 것을 주니 돈까지 달란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헌데, 무슨 이유에선지 이내 루이비똥 손지갑을 열었다.
그러고는 1달러 지폐 다섯 장을 셈한 뒤 봉두난발 히스패닉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 빈약한 몸뚱이로 붕가붕가 할 기운은 있는게냐?”
홈리스들은 다시 박장대소하며 할머니들에게 손바닥 키스를 보냈다.
(끝)
후기後記(현재 천사의 도시 LA에는 약 20만 여명의 홈리스가 동가식서가숙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또 한 도심 곳곳에 텐트를 치고 도보를 점거한 홈리스 수도 대략 5천여 명인 것으로 추산됐다.
이들 홈리스 가운데 코리안 출신도 약 1백여 명에 달한다는 전언이다.
놀라운 것은 코리안 출신 홈리스 가운데 남성보다 여성이 많다는 것.
상당수가 노약자인 이들 코리안 홈리스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루 하루를 힘겹게 연명하고 있다.
뉴욕과 더불어 홈리스의 숫자가 압도적인 LA. 이들이 도심 곳곳을 불법으로 점거해 혐오감을 주는 흉물스런 텐트 촌을 형성한 채 공권력과 반목(反目)하고 있는 실태다)
이산해 / 추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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