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19
어제:
36
전체:
1,293,687

이달의 작가
조회 수 67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모임이 잦은 연말연시 어디든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누군가가 있기 마련이다. 모임 구성원 중의 한 사람일 수도 있고 모임의 성격에 따라 그 방면의 전문가를 초청하는 때도 있다.

일단 그런 사람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분위기가 한결 밝아진다. 그들이 사용하는 유머 중에는 갓 탄생한 최신 버전도 있지만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조금 각색하여 사람들을 더욱 유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상황에 딱 맞는 절묘한 말로 사람들을 포복절도하게 하는 순발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런 사람에게는 자유로운 영혼이 지닌 발랄한 기운이 느껴진다.

어느 날 어디 나도 한번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제법 긴 그 스토리를 빡빡 외웠다. 마침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가 있길래 기회는 이때다 싶어 침을 꿀떡 삼키고 도전을 해 보기로 했다. 이목이 쏠린 것을 확인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중간에 그만 내가 먼저 깔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뭐야! 지가 다 웃어버리고….' 그렇게 김이 새고 말았다.

미련이 남아서 다시 한 번 시도를 했는데 이번에는 너무 진지했다. 나의 행동을 눈치챈 친구가 안쓰럽다는 듯 '그냥 하던 대로 해~' 한마디 툭 던진다. 왠지 좋아 보이는 남의 옷을 입어보려다가 들통이 나고 말았다. 그래 다른 사람의 재미난 말에 잘 웃는 것도 재능이야 자신을 위로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평소 입담 좋기로 소문난 어느 분에게 머리가 진짜 좋은가 봐요 메모리 실력도 대단하고 상황에 딱 맞는 말이 어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술술 나오는지 부럽다는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그의 답인즉 이야기가 늘 잘 풀리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 혹은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사람 앞이라야 혹시 실수나 실언을 해도 웃어 넘어가 주는 아량이 느껴져야 재미있는 말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쏟아져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 생각과 조금만 달라도 얼굴색을 바꾸거나 반박의 태세를 취하는 사람 앞에서는 입을 뻥긋하기가 싫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의 감정이다. 상대가 불손하게 대해도 개의치 않고 일관성 있게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그리 흔할까. 차갑고 퉁명스러운 가판대 주인에게 예의 바른 행동으로 대처한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 시드니 해리스에게 "왜 저렇게 불손한 사람을 친절하게 대하나?" 라며 친구가 물었더니 "왜 내 행동이 그 사람 태도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하지?" 라고 했다는 말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무조건 친절하자'는 인생철칙이라도 세워놓지 않은 다음에야 어떻게 상대의 태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태도에 지나치게 예민할 필요는 없지만 지나치게 담담한 것도 평범한 사람이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우리 보통 사람들은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의 마음이 활짝 열려 웃음판을 신나게 벌일 수 있도록 인정해 주고 기다려주고 무엇보다 웃어야 하는 순간에 뒤집히게 웃어주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웃는 것은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이 잘 할 수 있는 확실한 재능일 터이니. 새해에도 실력을 발휘하며 살자.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2. 1.7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89 수필 러미지 세일/꽁트 8 오연희 2004.10.21 1443
188 뜨는 별 file 오연희 2023.07.21 141
187 또 하나의 하늘 1 오연희 2007.04.25 823
186 수필 따뜻한 이웃, 쌀쌀맞은 이웃 오연희 2015.07.11 205
185 따땃한 방 오연희 2004.08.05 752
184 디카시-노을 file 오연희 2023.07.18 98
183 들리지 않아 1 오연희 2007.01.10 634
182 수필 드라마 '도깨비'에 홀린 시간 4 오연희 2017.01.31 317
181 수필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낙서' 오연희 2016.03.12 247
180 수필 두 개의 생일 기념 사진 오연희 2022.04.05 123
179 수필 동정과 사랑 사이 6 오연희 2017.05.12 179
178 수필 동거-결혼-이혼 오연희 2003.08.08 976
177 독을 품다 오연희 2015.08.29 243
176 수필 독서, 다시 하는 인생공부 오연희 2015.10.21 167
175 도너츠 오연희 2004.02.18 802
174 오연희 2010.02.15 1342
173 대추를 따며 오연희 2006.10.11 906
172 신앙시 당신의 에덴 1 오연희 2005.11.23 1340
171 당신 file 오연희 2004.02.14 1132
170 다이어리 1 오연희 2007.01.24 772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 21 Nex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