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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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수필
2003.07.23 02:52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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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는 일년 전 아들 생일선물로 딸이 사준 애완용 쥐 이름이다.  쥐의 영어단어인 햄스터의 첫 발음을 따서 “해”라고 짓고, 특별히 아름다울 "미"의 의미를 생각하지도 않았는데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해미'라고 불렀다.

아들과 딸이 우리집도 개 한마리 키우자고 수시로 졸라댔지만,  어린시절  개와의 나쁜 기억이 가슴에 깊이 남아있는 난  개 말만 나오면  “ 절대 안돼” 한마디로 거절이다.  엄마가 개를 싫어하는 사연을 훤히 알고 있는 아이들도 더이상 우기지 못하다가 이번엔 쥐를 들고 나온것이다.   솔직히 난 쥐도 싫지만 그것마저 안 된다고 하면 불평이 사라지지 않을거 같아 한발 양보한 셈이다.

아들,딸 그리고 남편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바로 해미에게로 달려 간다.  “해미야, 잘 지냈니?” 하면서 안아주고, 얼러주고, 먹여주고, 침대도 갈아주면서 어찌나 좋아  하는지 모른다.  때로는 해미가 말을 알아 듣기라도 하듯이 애뜻한 말과 표정으로 귀여워 어쩔줄 모르겠다는 가족들의 표정을 보노라면 해미 없을 때는 무슨 재미로 살았나? 싶을 정도로 집안의 분위기가 화기애애 하다.  가끔씩 아이들이 "엄마! 너무 귀엽죠?" 하면서 해미 꼬리를 잡고 갑자기 내 얼굴에 들이대곤 한다. 엄마의 기겁하는 모습이 재미난지 수시로 나를 놀려 먹는다.  때로는 남편까지 합류해서 나를 놀래키고는 자기네들끼리 재미있다며 깔깔거리곤 한다. 어쨌든 쥐는 크기가 작아선지 개보다는 덜 징그럽지만 그렇다고 해미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좀처럼 생기질 않는다.

개 자랑을 시작하면 얼굴 표정부터 행복해지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부러워 질 때도 있다.   어린 시절 개로 인해 마음 깊이 심겨진 공포감은 그리 쉽게 지워지질 않는다.  아마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나 보다. 두살 많은 언니가 나를 업은채로 뒤 쫓아오는 개를 피해 도망가다가, 등에 업힌 내가 그만 앞으로 쾍 꼬꾸라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뾰족한 돌에 콱 박힌 내 이마는 심하게 찥어졌고, 난 이마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얼굴에 낭자한 채로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때 꿰맨 이마 흉터자국이 지금도 희미하게 남아있다.  그 후 나의 개 공포증은 더욱 심해져 개만 오면 도망가고, 개는 더 흉악한 표정으로 으르릉대며 쫓아오고, 난 다시 공포에 질려 울어대는 겁쟁이로 변해갔다.   개가 오면 절대 도망가지 말고 그자리에 가만있어야 된다고 어른들이 누누히 일러주지만 개를 보는 순간 나의 심장은 벌떡증세를 보이며 나도모르게 앞으로 달려나가곤 한다.

자기네 개가 얼마나 이쁜지 모른다며 침을 튀겨가며 개의 영리함을 자랑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이럴때 이산가족 찾기라도 한다면 이 흉터가 분명 결정적인 단서가 될거라는 서두를 꺼내면서, 개 와 얽힌 나의 사연을 말하곤 한다. 개를 싫어하는 이유가 이렇게 충분한 사람이라고 열변을 토하고 나면 상대가 이해를 해주던 아니던 간에 마음이 조금 편안해 진다.


나의 아이들은 개가 나오는 영화를 즐겨본다.  개의 의리심과 사랑을 주제로 만든 영화를 보고 나면 잠잠하던 개타령이 다시 시작된다.    이런 상황에서 개대신 쥐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허락은 했지만 정말 노는 꼴들이 아주 가관이다.
쥐를 가슴에 품고는 간지럽다고 낄낄거리더니 급기야 뽀뽀까지 한다.

개뿐만 아니라 애꿏은 쥐까지도 삐딱선을 타고 있는 나를 제외한 우리가족 모두가 애지중지하는 해미, 개대신 우리가족이 된 해미는  단 한번의 눈길도 주지 않는 무심한 주인아줌마와는 상관없이 우리 집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런 그녀가 이번 우리 집 이사대열에 당당하게 끼게 되었다.  딸이 해미집을 조심스럽게 들어선 자기 차의 뒷 자석 에다가 곱게 모셔 들였다.  해미를 싣고 새집으로 가는 길에 딸이 꼭 살 것이 있다며 홈디포에 들리게 되었다.  딸과 나는 각자의 차를 운전해서 함께 가게 되었는데 샤핑한 물건이 많다며 해미를 내 차에  옮겨왔다.  그런데 혹시 차 안에 있는 해미가 답답해 할지 모른다며 창문을 반쯤 열어놓고 드라이브 하라는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창문을 열고 달리면 얼마나 시끄러운지 도대체 알고나 하는 소린지 말이다.

그뿐이 아니다. 자신은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가 차려줘야 간신히 한술 뜨면서 해미 식량이 떨어졌다며 밤중에 쥐 밥사러 나가는 꼴이라니 정말 해도 너무하다.  어찌나 쥐를 끼고 도는지 속으로는 “야, 이눔아 엄마를 쥐 반만큼이라고 신경 좀 써라.” 불평을 해본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심성이 따스하다는데 그런 점으로 치자면 난 아무래도 찬바람이 쌩쌩 부는 여자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어릴 때의 기억 때문이라지만 이젠 세월도 이만큼 흘렀고 그리고 개도 아니고 쥐니까 이쁘할만도 할 텐데 말이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사랑할 때의 그 기쁨은 진실한 사랑을 경험 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안다. 남에게는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가 나에겐 아주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오는 것,  이런 것을 ”만남의 신비” 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부엌에서 설거지 하다가 노사연의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 하는 노래가 입속에서 자꾸만 흘러나왔다.  이렇게 동물을 싫어하는 주인아줌마랑 하루 종일 한 공간에서 숨을 쉬야하는 해미!
그래, 우리의 만남은 우연은 아닐 거야.


<글마루>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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