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30
어제:
16
전체:
1,318,144

이달의 작가
조회 수 56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고3 엄마의 막중한 책임을 끝낸 막내 여동생이 셋째 여동생과 함께 미국에 왔다. 일단 우리 집에 짐을 부려놓고 운전을 해서 가든 여행사로 가든 네 자매가 함께 어디든 떠나자 했는데, 사정이 생겨 합류하지 못하게 된 언니로 인해 갈까 말까 고민 끝에 결정한 미국행이다.

미국에 사는 내가 다 알아서 챙겨야 할 일인데도 대장인 언니가 빠지니까 둘째인 내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아무튼 동생들을 데리고 미리 세워놓은 일정을 따라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저녁이면 뒷마당의 로스메리를 따다 차를 끓여 마시며 하염없이 나눈 이야기들, 독특한 향기만큼 독특한 삶의 사연들, 진심 어린 염려가 있었고 마음 축 늘어트린 편안한 웃음이 있었다.

대학 진학상담 고등학교 교사인 셋째의 주제는 직장생활이 힘들다는 것이다. 방학도 있고 보너스도 있고 퇴직하면 연금도 괜찮고 그래도 학교 선생이 안정적이잖니? 한마디 던졌다. 그 점에서는 어느 정도 수긍하지만, 학생들의 대학 진학이 걸려있으니 책임이 무겁고 주위의 기대치는 높고, 몇 년마다 전근해야 하므로 가족과 헤어져 사는 기간이 많고, 과중한 업무로 몸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고등학생들의 일반 생활상담도 겸하고 있는데 그 나이로는 감당하기 힘든 학생들의 기구한 사연을 듣고 나면 그들의 고통이 자신에게 전이되어 끙끙 앓기도 한다는 것이다. 보람도 적지 않아 정년까지 가보려는 마음도 있지만, 예전 같지 않은 몸 상태로 인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다.

우리 네 자매 중 가장 기대주였던 막내의 의외의 취미 생활이 나를 웃음 짓게 한다. 탤런트 문채원의 광팬인 막내, 기왕이면 남자 배우를 좋아하지 웬 여자냐? 며 킥킥댔더니 그래서 자기 남편도 자신의 취미 생활에 전혀 불평이 없다고 한다. 그 말을 하다가 갑자기 방으로 달려가더니 뭔가를 가지고 나온다. '좋은 사람 좋은 배우 문채원이 참 좋다'라는 제목의 탁상 달력이다. 팬들이 직접 찍은 사진으로 만든 달력인데 나한테 주려고 미국까지 챙겨 온 것이다.

방송국에서 주관하는 연기대상 인기상을 받는데 일조를 하기 위해 집안 식구까지 동원하는 막내. 셋째 언니 이름은 이미 팬 명단에 들어가 있다, 이름을 살짝 빌려 썼던 시어머니와 시아주버니가 '뜨거운 밤에…' 어쩌고 하는 전화 메시지가 왜 자꾸 오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문채원이 주연으로 출연한 드라마 '착한 남자'를 꼭 보라며 나에게 신신당부하는 등등 문채원의 팬 역할에 열심인 막내 때문에 많이도 웃었다.

3주가 꿈과 같이 지나고 그들이 현실로 돌아가는 날, 세 명이 가능할 때는 막내가 준비되지 않고, 막내가 날개를 달자마자 언니가 사정이 생긴 것을 보며 실현 가능성이 멀어 보이지만, "우리 네 자매 돈 모아서 여행가자!" 열성당원 구호와 같이 또 외쳤다.

미국은 한 명소를 보기 위해 오랜 시간 차를 운전해 가야 한다. 스쳐 지나가는 차창 밖 나무 한 그루도, 끝없이 이어지는 삭막한 사막의 모습도, 낯선 곳에서 먹는 점심 한 끼도 모두 여행의 한 부분이 듯,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네 자매 함께하는 여행' 그 꿈의 명소를 향해 우리는 지금도 가는 중이다.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4.1.22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89 그래도 그 말 밖에 오연희 2014.02.14 743
288 수필 [이 아침에] 나이 들어 더 아름다운 사람 (2/5/14) 오연희 2014.02.13 548
287 안단 오연희 2014.02.13 375
» 수필 [이 아침에] 네 자매가 함께 떠나는 여행 (1/22/2014) 오연희 2014.01.23 563
285 수필 [이 아침에] 한복 입고 교회가는 날 (12/21/13) 오연희 2014.01.23 791
284 국화차를 마시며 오연희 2013.12.08 619
283 수필 [이 아침에] 다문화 사회로 가는 한국 (12/7/2013) 오연희 2013.12.08 534
282 수필 [열린 광장] 엄마 곁에서 보낸 짧은 나날들 11/22 오연희 2013.12.08 398
281 수필 [이 아침에]오빠와 함께 했던 '추억의 창고' 11/12 오연희 2013.12.08 661
280 수필 [이 아침에] 불편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들 10/29 오연희 2013.12.08 700
279 수필 [이 아침에] 북한 여성 '설경'에 대한 추억 오연희 2013.10.21 598
278 수필 [이 아침에] 친구 부부의 부엌이 그립다 오연희 2013.10.21 526
277 암초 오연희 2013.10.05 472
276 아마 릴리스 오연희 2013.10.05 452
275 수필 [이 아침에] 찢어진 청바지에 슬리퍼 신은 목사 오연희 2013.09.25 749
274 수필 [이 아침에] 이육사의 '청포도'는 무슨 색일까? 오연희 2013.09.25 815
273 수필 [이 아침에] 부족함이 주는 풍요로움 오연희 2013.08.28 576
272 수필 [이 아침에]마음속에 그리는 '해피엔딩' 오연희 2013.08.28 449
271 지구에 등불 밝히다 오연희 2013.08.15 452
270 공작새 오연희 2013.08.15 64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21 Nex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