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수영하고 샤워하고 YMCA 문을 나서는데,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반가운 가을비, 하지만 비를 맞기에는 보송하게 말린 머리가 아깝다. 마침 탈의실에서 가끔 마주치던 타인종 부인이 차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하길래 반가이 호의를 받아들였다. 우산대를 함께 쥐고 걸어가며 막역한 우리 사이에 촉촉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다. 얼마 만인가 이런 순간, 잠시 감상에 젖는다.
미국 올 때 이삿짐에 넣어온 우산. 비가 드문 애리조나 살 때는 펴 보지도 못하다가 비가 잦은 영국에 사는 동안 잘 사용했다. 다시 미국으로 들어오며 시원찮은 것은 버리고 새로 산 것과 함께 챙겨온 우산. 지난 가을 수퍼급 엘니뇨가 온대서 거금 들여 지붕을 새로 하고 우산은 올 봄까지 차 안에 가지고 다녔다. 하지만 걱정스레 기다리던 엘니뇨가 조용하게 지나가고 우산은 빛을 보지 못했다.
비를 피할 유일한 연장이었던 어린 시절의 우산. 그땐 비가 어쩜 그리도 많이 쏟아졌는지. 바람 한 번 세게 불면 홱 뒤집혀 어찌할 줄 몰랐던 비닐우산부터 휴대가 간편한 접이식까지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자가용 시대를 맞아 소비가 급격하게 줄었을 터이다. 비 오는 날의 가족 사랑을 배경으로 찍은, 오래 전의 자가용 TV 광고 영상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우산은 이 땅에 비가 내리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우산과 함께 한 추억 속의 노래나 영화는 비가 올 때마다 누군가의 가슴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우산을 펴주고 싶어 / 누구에게나 / 우산이 되리 / 모두를 위해"로 맺는 이해인 수녀의 시 '우산이 되어'와 "이렇게 먼 거리에 서 있어도 / 나는 당신을 가리는 우산이고 싶다 / 언제나 하나의 우산 속에 있고 싶다"로 맺는 도종환 시인의 시 '우산'같은 그들의 사랑이 비 맞은 우리의 마음을 위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혼자 쓰는 우산도 좋지만, 둘을 온전히 덮어주는 큼지막한 우산도 좋고 둘의 바깥쪽 어깨가 비에 젖는 자그마한 우산도 좋겠다. 우산은 천장이 되고 비는 벽이 되어 아늑한 방을 만들어 주는 비 오는 날의 추억, 누구의 가슴에나 하나쯤 있을성 싶다.
사라져가는 낭만은 그만두고라도 남가주에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작년 이맘때쯤 엘니뇨 폭우 예고로, 지붕 공사하느라 우리 동네가 쿵쾅 소리로 떠들썩했다. 여러 매스컴을 통해 흘러나오는 심상치 않은 엘니뇨 전조 현상에 겁이 났다. 대비를 철저히 해서 피해는 최소화하고 넘치는 강우량으로 극심한 가뭄이 해소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미국 기상 전문가들의 각종 분석자료를 토대로 발표한 남가주 엘니뇨 발생 확률은 우리 집 우산처럼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올겨울은 엘니뇨와 반대현상인 가뭄이 올 것이라고 한다. 좀 더 구체적인 분석자료가 나오겠지만, 맞으면 진짜 가뭄 때문에 걱정이고 맞지 않으면 본의 아니게 이솝 우화의 '양치기 소년과 늑대' 짝이 날까 봐 걱정이다.
우린, 듣고 대처하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유비무환의 마음으로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미주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6.11.5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page=4&branch=NEWS&source=LA&category=opinion&art_id=4740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