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by오연희

드라마 '도깨비'에 홀린 시간

posted Jan 3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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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뜨고 있다는 드라마 한 편 정도는 꾸준히 보자고 마음먹은 것은 '응답하라 1988' 때문이다. 잘된 드라마라고 하도 떠들어대서 봐야지 별렀지만, 결국 보지 못했다. 20회라니 아무리 계산해도 시작하면 곤란할 것 같았다. 대신 최신 인기 드라마 한 편 정도는 놓치지 말고 보자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어우야담'에 나오는 인어 이야기를 모티브로 그린, 전생과 이생을 넘나드는 인어와 인간과의 애틋한 사랑의 여로였다. 도대체 이런 황당한 드라마를 누가 보나. 1·2회를 본 후 그만뒀다. 그런데 압도적 시청률이라는 기사에 귀가 얇아져 다시 TV를 켰다. 현실성 없는 스토리인 줄 알면서도 전생의 비극적 사랑의 결말이 안타까워 마지막 회까지 보게 되었다. 말도 안 되는 해피엔딩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인어로 분한 전지현과 그녀를 사랑한 남자 이민호, 그들의 연기와 외모는 역시 황홀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도깨비같은 소린지. '쓸쓸하고 찬란하신(神) 도깨비'가 '응답하라 1988'을 넘어 케이블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란다. 구미가 당겼지만 인어 이야기만으로도 벅차 도깨비는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의지박약증 환자처럼 홀린 듯 예고편을 보고 말았다. 허무맹랑한 스토리라는 느낌이 들면서도 '태양의 후예' 작가니, 최고 시청률이니에 또 흔들렸다. 재미야 그만이지만 사람과 도깨비, 저승사자, 귀신들과 함께 이생과 전생을 왔다갔다 하다가 현실로 돌아오면 꿈속을 헤매다 온 것처럼 머리가 휘황했다.

아무튼 인어나 도깨비같은 설화 속의 인물이 현세의 인간과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참으로 신비하고 환상적이다. 눈물이 진주가 되고 키스로 사람의 기억을 지우는 인어, 공간이동이 자유롭고 죽을 목숨을 살려내는 도깨비, 그들의 초능력은 한계 많은 인간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드라마의 인기비결이 초능력의 매력만은 아닐 것이다. 작가정신의 산물인 대사가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인터넷에 드라마 제목을 치면 내 마음에 강한 울림을 주었던 구절에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명대사가 탄생한다. 우리 현실에서의 실현이 힘들수록 힘을 발휘하는 명대사가 있다.

"난 900년을 넘게 살았어. 나는 예쁜 사람을 찾고 있는 게 아니야. 나에게 무언가를 발견해 줄 사람을 찾고 있지." 외모가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발견하는 신부를 찾는 도깨비의 사랑에 사람들은 공감한다. 그 외에도 명대사가 많지만 으뜸은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는 도깨비의 고백이다. 좋은 날이든 아니든 함께한 시간 모두가 눈부실 정도로 좋았다는 작가의 로맨틱한 사랑의 메시지에 열광하는 사람들. 드라마의 긍정적인 힘이다. 연애와 결혼, 출산에 겁먹은 '삼포시대'를 사는 한국의 젊은이에게도 진정한 사랑을 시작할 도화선이 되면 좋겠다.




미주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7.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