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는 대부분 결혼과 출산을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삶의 필수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대한가족계획협회의 오랜 홍보 효과에 힘입어 두 명의 자녀를 둔 가정이 대세였는데,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새 표어가 나오고 그 아래 지금과 같은 속도로 인구가 늘어나면 2000년에는 인구가 5000만이 될 것이라는 '위협적인' 경고가 더해졌다. 당시 자녀 두 명까지는 의료보험 혜택을 줬는데 그래도 '언제 정부가 주는 돈으로 살았냐?'라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셋을 낳은 친구가 있다.
휙, 새가 날아가듯 시간도 날아 인구 5000만이 될 것이라던 2000년대를 맞았다. '용기는 좋다만 월급쟁이 해서 어찌 감당하려고…' 속으로 걱정했던 그 친구, 작년에 한국 가서 만났더니 애 셋 낳은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애국자'가 따로 있느냐고 의기양양해한다. 부모 속 팍팍 썩였으면 그런 말 쉽게 나오지 않겠지만 다행히 모두 반듯하게 잘 자란 모양이다.
'자녀 하나 낳기 운동'을 그리 강하게 밀어붙여도 '하나는 외로워서 안돼' 했는데 이젠 '많이 낳아 잘 기르자'고 해도 '하나도 많아'로 상황이 달라진 것 같다.
결혼도 출산도 '선택'이란다. 한국에서 결혼을 선택하지 못하는 남녀의 변을 찾아보았다. 남자의 변 중에는 '현기증 나는 결혼 비용' '결혼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경험담' '현재 누리고 있는 삶의 가치보다 더 클 것 같지 않아서' 등이 있고, 여자의 변으로는 '내가 너무 아깝다' '나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나쁜 남자(?)와 사귀고 있다' '경제적 혹은 가족 부양에 대한 부담' 등을 들고 있다.
또 한 자료에 의하면 '초식남.육식녀 문화가 결혼시기가 늦춰지는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초식남'이란 연애에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외부 활동보다 그냥 방 안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의 남자로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업무 부담과 경기침체에 따른 경제적 요인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육식녀'는 연애에 적극적이고 고백받기보다 고백하는 것을 선호하는 성향의 여자로 여성들의 권익이 크게 신장하면서 자신감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서로의 입장 차이와 문화의 변화로 인해 결혼을 꺼리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결혼했다 하더라도 교육비와 육아 부담에 대한 불안 혹은 아이에게 매이고 싶지 않다며 출산을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생아 수의 급감은 국가의 존립이 달린 중대한 문제로 확대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회현상이 휘몰아치는 바람처럼 급격해 보인다. 변화무쌍한 바람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10년 혹은 20년 후에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가정도 해 볼 만하다.
난임 부부의 고통이나 입양을 고려하는 분들의 사연을 접하다 보면 출산을 거부하는 이들이 부르짖는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말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들리는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여동생의 고백이다. 자기 아이를 낳기 전에는 공부 잘하는 아이가 '예쁜 아이'였단다. 자기 아이를 낳은 후에는 말썽꾸러기 아이도 '제집에서는 얼마나 귀한 자식일까…' 마음이 더 가더라는 얘기다. 정말 수고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깨달음 혹은 기쁨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미주 중앙일보 2014. 1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