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기억으로/강민경
창문 밖
마주 보이는 바위산 다이아몬드 헤드가
범람하는 햇빛과 씨름 중이다
한 달만 가물어도
초록은 온데간데없으니
누굴 탓할 것인가, 다 제 몸이 척박한 것을
품 안의 숨넘어가는 초록들 붙잡고, 헉헉
밭은 숨 몰아 갈증을 토해내며 그럴수록
등 허리 고추 세우니
산등성 산마루가
용쓰듯 꿈틀거린다
요즘 세상에 개천에서 용 안 난다고 하지만
저 다이아몬드 헤드 바위산은 그럴 수는 없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용이 된 듯
비를 부른다
샛바람을 불러들인다
풀뿌리 찾아 길게 산그늘 드리우며
골짜기를 더듬는다
비가 올 때까지 햇빛과 다투며
희망을 내려놓지 않는다
초록의 기억으로 환생한다
살아만 있으면 기회가 온다고
생을 포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