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살을 보여준 여자
고대진
70년대 내가 다니던 학과는 학교 정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과학관이란 건물에 있었습니다. 강의실 까지는 백양나무가 은행나무로 교체된 백양로를 따라 한참을 걸 어가야 했는데 길 주위에는 건물도 지금처럼 많지 않아서 쌩쌩 거리는 바람이 이른 봄이나 늦가을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움츠리게 만들곤 했습니다. 일학년 때였지요.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든 가을날 아침 일찍 이 길을 따라 강의실에 올라가고 있는데 펄럭이는 예쁜 분홍치마를 입은 여학생이 내 앞에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긴 머리는 출렁출렁 걸음은 사뿐사뿐 청명한 가을날씨같이 산뜻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뒷 모습이 저렇게 예쁜 여자도 있구나…” 라고 감탄하며 걸음을 좀 더 빠르게 걸었습니 다.
앞 얼굴이 보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때 갑자기 돌개바람이 불더 니 그녀의 치마를 휙 들쳐 올렸습니다. 어맛-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올라간 치마를 얼른 감싸고 주저앉으면서 이 여학생이 한 일은 사방을 돌아보는 일이었습니다. 이 여학생의 눈에 근처에 있던 유일한 증인이던 내가 들어 왔겠지요. 보았을까 말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듯 날 노려보는 이 여자의 얼굴은 뒷모습만큼이나 아름다웠습니다. 난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고운 얼굴을 보면서 생글거리며 말했다. “전 아무것도 안 봤어요. 흰색 속옷은 더구나 못 봤고요...” 내가 여자에게 했던 첫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어머니만 빼고 말입니다. 다음날 연합채플시간에 친구들 과 함께 있던 그녀와 마주쳤습니다. 그녀가 날 알아보고 다가와서는 심각한 얼굴 표 정을 만들며 낮지만 성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다 봤죠? 책임지세요...” 갑자기 받은 공세에 당황한 내가 대답했습니다. “제가 뭘요? 안 봤다고 했잖아요.“ “남의 처녀의 속 살을 훔쳐보고도 치사하게 꽁무니를 뺀다 이거죠? 비겁하게 거짓말까지 하 기에요?“ 소리를 지르는 것을 듣고 사람들이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난 졸지에 치 한에 비겁하고 거짓말하는 남자로 몰린 샘입니다. 내가 어수룩하게 보여서 촌놈이라 는 것을 확신하고 날 우습게 만들고 망신을 주려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나도 버럭 화 를 내며 말했습니다. “알았어요. 정 그러면 저도 속살을 보여주면 되잖아요. 자 보 세요. 총각 속살입니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 혓바닥을 길게 빼어 물고 내 속살을 보여주었습니다. 의사에게만 보여주었던 속살(혓바닥)을 그녀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그녀는 갑자기 은방울 구르는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목젖이 보일 만 큼 크게 입을 벌리고 웃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눈물까지 닦아가면서 나에게 두 번째 로 속살을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나도 속살을 다시 보여주었습니다. 처녀의 속살을 두 번 본 대가로 난 그녀의 <보건 2> 과목의 파트너가 되어야 했습니다.
당시 여학생 들이 필수로 들어야 했던 <보건 2>라는 과목에는 반드시 남자 짝꿍을 데리고 가야 출 석을 인정받을 수 있었는데 내가 그 짝꿍이 된 것입니다. 그 강의는 결혼을 앞둔 남 녀에게 결혼 예비교육을 시킨다는 취지에서 반드시 짝을 데려오라고 한 것이었지요.
아니 짝을 대려 오랬는데 동생을 데려 오면 어쩌나…하는 교수님에게 “우린 서로 속 살을 보여준 사이입니다” 라고 큰 소리로 대답하여 그녀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그 과 목에서 나는 처음으로 육아 교육이며 성생활이며 피임 또 아이의 출산 과정까지 영화 로 보는 참 건강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속살도 서로 보여 주었겠다 아이 낳는 모습도 함께 본 사이가 되어버린 우리는 참으로 보아서 편하고 만나서 편하고 안 보 아도 또한 편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젊은 남녀끼리는 상대가 결혼상대라는 생각을 접 고 나면 무척 편안한 관계가 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편안하다면 참 이상 한 말이지만 성숙했다는 말 혹은 겉늙었다는 말도 됩니다. 정말 이 여학생은 나에게 인생을 다 아는 것 같이 현명하고 노련하게 보였지요. 그 가을날 백양로에서 어린 동 생같이 보이는 내가 너무 개구쟁이 같이 까불어서 버릇 고쳐주려고 책임지라…고 했 었다고 고백하던 그녀도 지금 생각해보면 상긋한 냄새가 폴폴 나는 어린 봄나물 같은 나이였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그리고 미래에 대한 꿈이 구름만큼이나 가득해야 할 나이였는데 그때 그녀는 좋은 짝을 만나 시집가서 안정된 생활을 찾을 꿈만 가득 한 것 같았습니다. 자기의 조건에 맞는 짝을 구해야 된다는 생각, 부모님을 생각해서 부모님이 만족하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 등등으로 중매결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 고 있었고 누군가가 자기의 아름다움과 학벌과 집안 등등 모든 것에 적합한 사람을 소개해주어 손해보지 않는 결혼을 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 했습니다.
내가 대학원 에 가라는 이야기라도 하면 항상 “이 나이에 내가 뭐...” 라고 했지요. 야 이 나이 에 내가 뭔 공부고 유학이냐? 아니면 이 나이에 내가 뭔 연애냐? 시집이나 가지... 라고 말입니다. 정말 그녀는 졸업하자마자 부모님 말씀에 따라 자기 조건에 맞는 이 름난 부자 집 가문에 학벌 좋고 잘생긴 신랑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참 좋은 신랑을 만났다고 결혼식장에 찾아가 축하는 해주었지만 좀 씁쓸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반드 시 우리가 서로 속살을 보여주었던 관계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그녀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몇 년 전 여름 동생들과 함께 모일 때였습니다. 나는 이런 여잔 싫 어 혹은 나는 이런 남자는 싫어 라는 말을 하고 있었는데 막내 동생이 “나는 푹 퍼 진 여자가 싫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푹 퍼진 여자? 엉덩이가 푹 퍼진 여자? 혹은 가슴이? 라고 말하며 웃고 있는데 말인즉 마음이 늙어 버린 여자라는 것입니다.
내 나이에 무슨 변화를... 내 나이에 무슨 사랑을… 하면서 고요하고 평안한 여생을 맞 으려는 사람, 아이까지 이렇게 잘 낳고 기르는 날 어쩔꺼야 혹은 이 나이에 날 어쩔 꺼야 자기만 손해지 뭐… 라면서 주저 앉아버리는 여자 말입니다. 그 말을 듣다가 갑 자기 “이 나이에 뭐...시집이나 잘 가서 살지...” 라고 말하던 나에게 속살을 보여 준 아름다운 그녀가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내 동생이 싫어하는 푹 퍼진 여자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듣던 여자 쪽에서도 “나도 푹 퍼진 남자가 싫어요.” 라고 했습니다. 푹 퍼진 남자라. 흠... 혹시 요즘 점점 나오는 내 똥배 이야기가 아니었던가요? 아니었겠지요. 40대 이후의 그것은 인격이라고도 한다 지 않습니까.
-2017 문협월보 2월 회원 수필 감상에 실린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