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4
어제:
29
전체:
1,293,701

이달의 작가
조회 수 37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한국에 와 있다. 연로하신 친정엄마께 맛난 것도 만들어 드리고 시장도 함께 다니고 무엇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리라… 나름 작심을 하고 왔다. 그런데 첫날부터 삐거덕거린다. 반찬이라도 한두 가지 만들까 싶어 장을 봐 오고 냉장고라도 열라치면 '네가 뭘 알겠냐?'며 당신이 나선다. '이게 아닌데…' 싶어 항변해도 들은둥만둥이다. 잠시 다니러 온 딸은 그저 반갑고 귀한 손님일 뿐이다.

비척비척 걸음이 흔들리는 엄마와 느긋하게 쇼핑을 즐기는 것도 쉽지 않다. 할 수 없이 나 혼자 집을 나서면 당신이 알고 있는 노선을 소상히 그리고 누누이 일러준다. '엄마, 나 한국 사람이거든'해도 소용이 없다. 돌아올 때까지 온통 딸 걱정 뿐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 사우나탕에 갔다. 주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린다. 자식 이야기, 먹는 이야기, 다이어트 이야기 그리고 남편 바람피운 이야기까지 여자들의 수다는 바톤터치로 이어져 끝이 없는 것 같다.

주제가 다양하지만, 시어머니 혹은 친정어머니와 얽힌 애틋한 사연들이 귀에 크게 들어온다.

'이 자식 저 자식 집에 옮겨 다니는 천덕꾸러기로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40년 동안 시어머니를 모셨다는 한 여인의 고백에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자신은 부모를 모셨지만, 자신의 노후는 자식들에게 의탁할 수 없는 요즘 세태에 대해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그녀, 왠지 슬프고 왠지 아름답다.

여인들의 이런저런 사연을 들으며 부모님을 모시지는 못하더라도 여차하면 달려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자식들은 그나마 효자라는 생각이 든다. 자주 찾아뵙지 못한 탓인지 나이 듦의 변화가 더 급격하게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엄마, 왜 그래?'가 툭 튀어나오고 만다. 민망함과 섭섭함이 깃든 엄마의 표정에 코가 시큰해진다. 엄마 곁에서의 이 짧은 나날들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순간임을 생각한다. 미국 돌아가면 다시 현실 속으로 들어가겠지만, 문득문득 이 시간이 사무치게 그리울 것 같다.

미주 중앙일보 2013.11.22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9 암초 오연희 2013.10.05 449
128 수필 애리조나, 영국, LA에 살아보니 오연희 2015.07.06 301
127 수필 애써 가꿔야 열리는 '관계' 오연희 2017.09.01 110
126 수필 야박한 일본식당 오연희 2008.08.22 1573
125 수필 야박해진 국내선 비행기 인심 6 오연희 2016.09.14 329
124 신앙시 약속 오연희 2006.06.08 1144
123 수필 양로병원에서 만난 어머니 2 오연희 2022.06.17 118
122 수필 양심의 소리 오연희 2004.01.14 1021
121 어느 시인의 첫 시집 1 오연희 2006.02.08 849
120 어느 여름날의 풍경 오연희 2004.08.05 705
119 어느 첫날에 오연희 2004.02.03 1043
118 어떤 동행 1 오연희 2009.02.19 1236
117 어른이 된다는것은 오연희 2003.07.01 879
116 어머니 오연희 2004.04.13 642
115 억새꽃 1 오연희 2008.09.17 1609
114 언어의 구슬 오연희 2005.07.07 831
113 엄마, 아부지 오연희 2003.12.13 854
112 생활단상 엄마도 여자예요? 2 오연희 2003.06.01 1236
111 엄마의 자개장 4 오연희 2016.05.10 162
110 엎치락 뒷치락 오연희 2006.12.13 692
Board Pagination Prev 1 ...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 21 Nex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