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새집 / 천숙녀
흰 차일이 산허리를 덮었다
여든 여섯
그리도 꿋꿋하시던 생애
흙덩이에 덥혀 답답해 어찌 하실까
차곡차곡 겹쌓은 나날
기쁨과 노여움과 흐리고 맑은 모든 것
붉은 천 쪼가리의 명정銘旌 한 장에
영양潁陽 ‘千公 鎬子 昶子’
이렇게 묻힘으로 끝이라니
침구철학인鍼灸哲學人의 불꽃이던 삶
눈물바다의 일엽편주一葉片舟 아니면
구름 꽃길 가시느라 꽃가마 타신 걸까
큼지막하게 참을 인忍 자를 쓰셔
벽에 붙여주시곤 성큼성큼 돌아서 가신 아버지
참을 인忍자 획 하나에 배어있는 혈맥血脈은
끓어오르는 부정父情의 깊은 샘물
우물가를 휘덮은 하얀 천의 차일
그 끝자락 휘감는 바람이 아프다
부디 새집에 드신 아버지로부터
“이제는 참 편안 하구나” 라는 편지가
곧 올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