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이기를 포기한 기러기들

2008.02.29 12:24

권태성 조회 수:398 추천:41

철새이기를 포기한 기러기들
사철 골프장 주위의 호수를 맴돌며
동아리를 틀고 늦은 봄 새끼를 친다
비료로 자란 골프장 풀 뜯어 먹고
화학 물질로 오염된 호수에서 놀다
가끔은, 골프 공에 맞아
비명 횡사하기도 하고
날개를 다치거나
한쪽 다리를 저는 놈도 있다

지저분한 배설물들
그린 위에 내 질러 놓고
골퍼들 욕
되 배기로 얻어 먹으면서
맑은 시냇물 흘러 들고
물고기 뛰노는 고향을 등지고
천덕꾸러기가 되었단 말이냐!

철새이기를 포기한 기러기들
고향 찾아 수 만리를 날아가던 강인함도
떼지어 펼치든 아름다운 군무도
막연한 그리움 키워주던 신비스러움도
모두다 간 곳 없고
인간의 주위에서 서성대는
천덕꾸러기의 가엾은 모습뿐

가을이면 반가운 손님으로 찾아와
봄이면 하늘 높이 날아
떼지어 고향 찾아 가던 너희들
너희들 보면서 어린 꿈 키우던 나
나는 지금도 고향 찾아 날고 싶은데
너희들은 어찌하여 날개를 접었느냐?
참으로 불쌍하고 어리석은 것들아!

요동치는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철새이기를 포기한 기러기처럼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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