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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6 10:08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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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아동문학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가 멀리 리치몬드에서 오셨다는 한 신사분과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소아정신과 의사로 30년 일하고 은퇴한 후, 동시를 쓰고 있다는 초로의 작가 였는데 이런 저런 대화 중 '내가 좋아하는 책' 이야기가 나왔다. 그가 추천하는 몇 권의 책 리스트 중 '꾸뻬'라는 이름이 귀에 쏙 들어왔다. 인터넷에서 책 검색하다가 내 눈을 여러 번 스쳐 간 이름 '꾸뻬.' 선뜻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읽어 봐야지' 막연한 바람은 가지고 있었다.

얼마 전 바로 이 소설을 영화화한 '꾸뻬씨의 행복여행'을 책보다 먼저 접하게 되었다. 런던의 성공한 정신과 의사 '헥터.' 그의 진료실은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마음이 병든 그들을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할 수 없음을 깨달은 헥터도 우울증에 빠져든다. 고심 끝에 진료실 문을 닫고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여행길에 나선다. 중국 아프리카 미국 등. 세계 곳곳의 여행길에서 만난 수많은 낯선 사람들과의 인연을 통해 조금씩 행복이란 그림의 퍼즐 한 조각씩을 채워간다.

수첩에 하나 둘 행복의 참된 의미를 더해 갈 때마다 그것을 깨닫게 되기까지의 상황 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소소하고 시시해 보이는 것들 속에서 솎아낸 행복의 감정을 만화처럼 재미있고 유화처럼 쫀득하고 풍경화처럼 낭만적으로 펼쳐 보여준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나니 마음 깊은 곳을 만져주던 행복에 관한 그의 명언들은 가물가물하고, 주인공 헥터 역을 맡은 사이먼 페그의 순박하면서도 약간 멍해 보이는 코믹한 표정만 눈에 선하다. 무엇보다 의아한 것은 영화 제목과는 달리 '꾸뻬'라는 이름은 등장하지도 않았다.

결국, 원작이 궁금해 책을 구해 읽기 시작했다. 저자 프랑수아 를로르는 실제로 프랑스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며 심리학자로 '꾸뻬씨의 행복여행'은 환자를 진료하며 얻은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쓴 실화 소설이라고 한다. 원작의 배경은 영화 속의 런던이 아닌 파리 중심가이고 주인공 이름도 헥터가 아니라 제목처럼 꾸뻬이다. 등장인물의 배역 경중에 있어서도 다소 차이가 나지만, 스토리의 기본 골격에는 다름이 없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행복의 첫 번째 비밀부터 지금 이 순간과 하나가 되는 근원적인 행복감까지 행복 공감 여행을 잘 다녀왔다. 작가는 죽음을 앞둔 사람까지를 포함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행복은 존재하며, 행복을 선택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 몫임을 깨닫게 한다. 삶이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우리를 요동치게 하는 잡다한 생각들에 휘둘려 누리지 못하는 행복이 수수한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

책이 영화보다 더 구체적이고 세밀하긴 하지만, 머릿속에 남아있는 영화의 한 장면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주인공 헥터가 아프리카행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여성에게 "당신은 무엇에 행복을 느끼나요?" 하고 물었을 때 "집, 가족, 따뜻한 고구마 스튜"라며 꿈꾸듯 되뇌는 그녀의 표정이다. 나도 오늘 화창한 날씨, 마음을 나누는 친구들, 나를 필요로 하는 일터, 쫄깃한 베이글 빵 등 일상 속에 담겨있는 행복을 찾기 위해 마음의 눈을 동그랗게 떠본다.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5.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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