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5

2003.03.30 03:08

김동찬 조회 수:300 추천:21

사람들이 아이엠에프 하늘이라고 말하던 우중충한 날, 수제비 반죽처럼 눈이 떨어져 차들이 길을 이고 기어다니던 날, 우리들은 워커힐 이 층 뷔페 식당에서 만나 오래 전의 겨울과 봄을 얘기했다.

맥주 먹고 취해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농담 삼아, 우리들 주머니 사정을 안주 삼아사십 원 짜리 닭발을 뜯으며 소주를 먹던 시절이 있었지.

동대문 종합상가 점원으로, 냉동 학원생으로, 택시 운전사로, 공돌이로, 말단 은행원으로, 대학을 다니는 자취생으로 바람 닿는 곳에 모진 시멘트 틈새를 찾아 뿌리를내리던 시절이 있었지.

얼음도 잘 얼지 않는 남도의 겨울은 서울 와서 보니 애들 장난이었어. 영하 이십도. 세숫대야가 손에 쩍쩍 달라붙었으니 참말로 추워도 징하게 추운 시절이었지. 그래도 내복 한 번 안 입고 그 겨울을 견뎠으니 젊음이 난로였지. 니들 얼굴 한 번보고 소주 한 잔 하면 몸에서 불이 났지.

창경원에 왁자지껄 벚꽃 피어날 때, 그 잘난 서울의 봄을 낮은 키로 쳐다보며 여기저기 밟히면서 우리의 꽃들을 피워 냈지. 개나리, 병아리, 고향의 따뜻한 햇살, 그 촌스럽디 촌스러운 색깔로.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지.

와인을 마시다 말고 한 놈이 말했다. 옛날 짬뽕이 먹고 싶다. 그래 건더기는 건져먹고, 남은 국물에 소주 한잔. 우리는 숟가락을 놓고 일제히 창밖을 내다보았다. 눈이그치고 내려갈 길이 뚫리길 기다렸다. 음식이 식고 있는 동안에도 눈은 무심한 얼굴로 펑펑 내리고 있었다. 눈은 민들레 하얀 꽃씨가 되어 하나씩 춤추며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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