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뜨리는 바다

2003.05.30 11:19

김동찬 조회 수:290 추천:30

바다 앞에 서면
우습다.

지킬 것도 없는데
빈 모래성 하나
문을 굳게 잠그고 있다.

먼지처럼 쌓여있는 모래알들 위에
물새 한 마리
발자국 몇 개를 찍는다.

파도가 밀려와 쓸어낸다.
남은 것은



며칠 동안 찾고 있었던 싯귀절이
수평선 너머로 저물어가고
풀리지 않는 실타래인 양
조약돌 몇 개를 집어던진다.

해변의 상가에
하나 둘 불이 들어오면
바다는 어둠을 밀고 와
소리로 남는다.

바위도
절벽도
따뜻한 불빛이 있는 술집도
조금씩
조금씩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너와 가졌던 오르가즘도
지워지지 않던 미움도
키를 한 치나 더 늘려보려 했던
꿈이라 이름 붙였던 것들도
우습다,
결국엔 다 모래가 될 것이다.

바다 앞에 서면
문득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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