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렉스 계

2005.03.22 12:06

김동찬 조회 수:671 추천:22

이거 차고 다닌 지가 십년도 훨씬 넘었네.
금딱지는 아니지만
당시에 4000불도 더 했지, 아마.

요즘 나오는 시계들 보니까
진짜 세련됐더라
김희선이 허리같이 날렵하더구만.
까맣게 반짝이는 게
올인에 나오는 탈랜트.... 이름이 뭐지
아무튼 그 여자 눈동자 같아.

이 놈은 무거운데다
색깔도 촌스러워
금빛 은빛이 뭐야.
시간도 잘 안 맞아
항상 조금씩 빨리 가요
조금 차고 다니다보면 한 오분씩 앞서가고 있어.
혼자 알아서 가지도 못해
반자동이야
한 달에 한 번씩 날짜도 고쳐 줘야 돼.
아플 때 머리맡에 놓아두면 옆에서 지도 죽어.
그래서 아예 차고 살아.
잘 때도
골프칠 때도
밥먹을 때도
세수할 때도
노상 끼고 사는 거야.
그러다보니 이제 내 손목에 있는지 없는지
소매 걷어봐야 안 다니까.
그래도 로렉스는 로렉스야
아직 고장 한 번 안 났어.
긴 초침이 쉬지 않고 총총총총
걸어가고 있는 걸 보면
꼭 내 곁에서 항상 움직이고 있는 마누라 같애.

참, 마누라 하니까 생각나네.
나 야외장터로 장돌뱅이 생활하고
우리 마누라 실내 스왑밋에서 장사했거든.
시부모님 모시고
애들 키우느라
자기는 구멍난 속옷 입으면서
한 푼 두 푼 모아서
시장 사람들이랑 ‘로렉스 계’ 붓더구만
여자 거로 타는 줄 알았는데
굳이 남자 시계를 사는 거야.
미국까지 와서
남자가 기죽으면 안 된나나
뭐라나 하면서.

     <다층> 2005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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