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의 <목포>

2005.07.15 02:38

김동찬 조회 수:503 추천:26



유년이 있던 곳
연동 철길 옆 만화가게에
세상에 대한 은둔이 있던 곳
기적소리보다 더한 울림도 있었다
오거리, 유달산, 삼학도, 째보선창에
목포의 눈물로 사랑을 묻던
나만이 꿈꾸던 인생도 있었다
조각공원지나 어둠바위 너머
오르지 못할 세상이 있다고
온 몸으로 가르친 일등바위가
아련한 슬픔으로 가위 누르던
해질 무렵 부두에
하의, 장산, 비금, 도초로 떠나는
다시 돌아올 것만 같은 사랑이 있던 곳
삶의 뒷심이 있던 곳

* 하의, 장산, 비금, 도초 ; 목포주변의 섬

-- 정글(1958 - )의 시 <목포> 전문

정글은 본명이 정문석인 내 고향 중학교 동기동창생 시인이다. 위 시는 그가 최근 출판한 <펠리컨의 꿈>이란 시집에 실려있는 시 <목포> 전문이다.

초등학교 때 목포역에 내리면 <목포의 눈물>이란 노래가 플랫폼에 나오곤 했었다. 어린 마음에도 처량하게 느껴지곤 했는데 너무 여행객들을 애상에 젖게 만든다고 목포역측에서 틀어주다가 안 틀어주다가 했었다. 목포가 항구일 뿐만 아니라 기차의 종착역이었고,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소외된 지역이어서였기 때문인지 목포 하면 이별과 눈물 그리고 슬픔이 비릿하게 느껴지곤 한다.

정문석의 <목포>도 예외가 아니어서 은둔, 눈물, 오르지 못할 세상, 슬픔이 들어 있다. 그러나 그 목포의 눈물 사이로 꿈, 사랑, 삶의 뒷심 또한 보인다. 밝음과 어두움으로 짜여져 있는 우리의 인생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정문석의 시는 한편 한편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것이 목포의 선창가에서 얻은 삶의 뒷심일 수도 있겠고 또 시대와 고향을 같이 하고 있는 내 공감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시집 제목을 따온 그의 시 <펠리칸의 꿈>의 밑글에서 "펠리컨은 먹을 것이 없어지면 새끼한테 자기 내장을 토해준다.나도 내장을 토하듯 시를 쓰고 싶다"라고 말한 데서 엿보이는 그의 투철한 시 정신이 그의 시의 목소리를 뜨겁게 해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2 김정란, 이승은, 김종삼, 임창현, 오승철 김동찬 2005.08.28 505
» 정글의 <목포> file 김동찬 2005.07.15 503
60 헤드라이트를 켜고 가는 별 김동찬 2005.07.10 312
59 선암사 뒷간 김동찬 2005.05.20 317
58 루미의 털 김동찬 2005.05.20 354
57 로렉스 계 김동찬 2005.03.22 671
56 희망봉에서 희망은 김동찬 2005.03.08 280
55 전갈자리 김동찬 2005.03.08 438
54 놀라운 세상, 없다 김동찬 2005.03.04 287
53 부석사 무량수전 김동찬 2005.03.03 346
52 겨울연가 김동찬 2005.02.06 315
51 1-9 김동찬 2005.01.09 488
50 내가 그린 그림 김동찬 2004.09.11 600
49 아내의 꿈 김동찬 2004.09.06 679
48 악어처럼 입을 벌려봐 김동찬 2004.09.06 860
47 새ㅡ 김동찬 2004.08.25 457
46 대한독립만세 김동찬 2004.08.25 417
45 밥을 먹다가 김동찬 2004.08.25 343
44 큰비 김동찬 2004.08.25 308
43 봄날의 텃밭 김동찬 2004.08.25 298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7.07

오늘:
30
어제:
3
전체:
36,6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