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풍경
2005.09.12 00:52
내 스무 몇 살 피어나던 날.
비발디의 봄을 들으면서
세검정 쪽으로 가던 8번 버스 안
아침 열 시는 넘었지.
창밖으로 보이는 가게들에서는 행길로 물을 뿌리고 있었고.
무슨 여성 살롱인가 하는 방송이 나오고
반짝이는 햇빛 사이로 그늘을 키우고 있는 플라타너스 가로수.
봄바람이 차들을 밀고 가다가
한가한 차 속을 검문 경관처럼 쑤욱 둘러보고 나갔던가.
그래 예쁘장한 낯익은 여학생 하나 있었지
빈 자리에 앉지도 않고 새침하게 “삼중당 문고”를 들고 서 있던
하얀 목, 긴 머리칼.
햇살이 뿌리는 물살에 바퀴를 굴리며
보도블럭 사이 투두툭 떨어지기도 하던……
스무 해도 훨씬 지나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런 풍경이
정말 까맣게 잊혀졌던 시시하고 시시한 풍경이
작은 바람에 움직이는 나뭇잎 따라
함께 흔들흔들 살아나
나를 흔들어대고 있다.
지난 스무 해 동안 내내 나를 따라와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있는 것처럼
비발디의 봄을 들으면서
세검정 쪽으로 가던 8번 버스 안
아침 열 시는 넘었지.
창밖으로 보이는 가게들에서는 행길로 물을 뿌리고 있었고.
무슨 여성 살롱인가 하는 방송이 나오고
반짝이는 햇빛 사이로 그늘을 키우고 있는 플라타너스 가로수.
봄바람이 차들을 밀고 가다가
한가한 차 속을 검문 경관처럼 쑤욱 둘러보고 나갔던가.
그래 예쁘장한 낯익은 여학생 하나 있었지
빈 자리에 앉지도 않고 새침하게 “삼중당 문고”를 들고 서 있던
하얀 목, 긴 머리칼.
햇살이 뿌리는 물살에 바퀴를 굴리며
보도블럭 사이 투두툭 떨어지기도 하던……
스무 해도 훨씬 지나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런 풍경이
정말 까맣게 잊혀졌던 시시하고 시시한 풍경이
작은 바람에 움직이는 나뭇잎 따라
함께 흔들흔들 살아나
나를 흔들어대고 있다.
지난 스무 해 동안 내내 나를 따라와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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