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환시조산책113] 김영수의 <칸나> 외

2003.12.24 03:23

솔로 조회 수:237 추천:4

** 지진에 대한 안부를 물어오셨더군요. 전 그 때 엘에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모르고 지나갔습니다. 다운타운에 있는 제 직원에게 전화로 별일 없었냐고 물어 봤더니 직원들도 모르고 지나갈 정도 엿으니 진원지가 아닌 곳은 별 피해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창호의 시조사랑 들려서 아래 형님의 글을 복사해 왓습니다. 원래 이정환의 시조산책은 고도원의 아침 편지처럼 이멜로 매일 보내는 겁니다. 저에게 매일 배달되어 오던 제 이멜서버가 중단이 돼 못받아보고 있어서 형님 감상문이 실린 줄도 몰랐다가 시조사랑에 들려 알게 된 것입니다. 매일 쓴다는 게 보통 부지런해서는 안 될 것 같은데 저도 내년에 매일 비슷한 걸 써야한다니 걱정입니다.
기쁜 성탄절 보내시길 빕니다.

***
[이정환시조산책113] 김영수의 <칸나> 외

얼마 전 한 시조문학 행사에서 미국으로 이민간 지 20년 가까이 되는 김영수 시인을 만났습니다. 그가 그날 건네준 시조집『인연』을 집으로 돌아와 읽었습니다. 태학사에서 펴낸 우리 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88번째(2003년 11월 14일 발행)로 나온 시조집이었습니다.(거의 대부분이 단형시조였음)

섬뜩한 칼끝이 불의 꽃으로 핀,
온몸이 절절 끓어 시뻘건 쇳물로 핀,
아 식어 내리 꽂히기 전
쪼개져 붉게 진다
-<칸나>

그냥 이름 그대로
구름이라 불러다오

유정하게 부르면
나도 금세
슬퍼지거든

호명이 끝나기 전에
네 뺨을 적실지 몰라
-<구름>



눈바람
거친 소나기
땡볕 같은 두엄냄새

나무는 체로 걸러
빛과 향을 구웠구나

사과를 껍질 째 먹고서야
한 알의 천지를 본다
-<사과 한 알>

후렴이다
너의 노래는
열정 끝에 부르고 싶은

마지막 박수갈채가 낙엽으로 쏟아지는 숲

무대를 떠나기 전 잠시 뜨거운 흐느낌이다
-<晩秋>

나무는 새소리를 공으로 듣지 않고 벌레들을 길러 노래 값을 치르네

그것도 제 살을 파 먹인

잎이며,
밑둥치며,
-<노래값>

♠ 감상 나누기

천천히 읽어나가면서
그가 한 편 한 편마다 굉장한 공정을 들이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섯 편을 예로 들었지만, 형편이 닿는다면 더 많이 소개하고 싶을 정도로
시조의 본령인 단형시조들의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심지어 <단시조>라는 작품까지 있었는데 그 작품의 초장에서 '단수는 내 시조의/시작이고 끝입니다'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단형시조에 대한 철저한 인식 아래 창작에 임하고 있는지 헤아리고도 남습니다.

<칸나>에서는 대상의 외양을 그리되 신선한 비유와 적확한 표현으로 실제의 칸나의 모습보다 더 명징한 한 세계를 열어 보이고 있습니다. 그 누가 '칸나'를 이보다 더 생동감 있게 묘사해낼 수 있을까요?

<구름>도 예사로운 작품이 아닙니다. 종장이 더욱 그렇습니다. 묘한 울림을 줍니다.

<사과 한 알>에서 형상화한 생명에의 경외와 신비는 주목할만하며, <晩秋>와 <노래값>에서 자연 현상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을 통해 드러내 보이고 있는 새로운 의미 해석도 결코 범상치가 아니 합니다.

미주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원로 시인 고원 선생을 비롯하여 김호길, 김영수, 김동찬 시인의 健筆에 愛情어린 주목과 성원을 더 많이 보내야 할 것입니다.
(최근 <시조산책>에서 만난 LA의 박영보 님의 건필도 아울러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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