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과 까지

2011.10.06 20:04

정석영 조회 수:390 추천:41

달밤과 까치
                     정원석

달빛이 멀거니 푸른 밤이었습니다.
  포푸라나무 중턱의 까치집에는, 까치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밤도 깊어서, 까치는 자다가 눈을 부시시 떴습니다.

     똑똑똑 똑똑똑
     계십니까 까치님
     주무십니까

  그것은 멀리 안개 속에서 부르는 것 같은 소리였습니다.
  그쳤다가는 다시 흐릿하게 들렸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습니다.

  “네, 누구십니까.”
대답하면서 까치는 문을 열었습니다.
바깥에는 커다란 안경을 쓰고, 부엉이가 혼자 달빛에 서 있었습니다.
  어깨에는 큼직한 가죽 가방을 메고, 손에 편지를 한 뭉치 들었습니다.
편지를 배달하는 우체부 아저씨였습니다.

“밤늦게 부엉이님, 수고하셔요. 내게 온 소식이 있습니까.“
“편지가 왔습니다. 별나라에서.”

까치는 잠자코 편지를 받았습니다. 파란 나뭇잎사귀에 쓰인 편지였습니다.
꼬불 꼬불한 글씨가 또박또박 적혀 있었습니다.

“별나라에 가시지요. 칠월 칠석엔.”
부엉이는 하늘을 기리키며 물었습니다.
“네, 그날은 까치 명절. 꼭 갑니다.”
“그러면, 부탁 하나 들어주셔요.
“견우 직녀 두 님을 만나시거던
못 가는 우리들 인사 전해 주셔요.“
“아무렴요 잊지 않고 꼭 전하지요.”
까치는 눈을 가늘게 하며, 머리를 꾸뻑 하였습니다.

  창 너머로 초승달님이 푸른 달빛을 편지 위에 뿌려줍니다.
까치는 푸르게 물든 편지를 소리내어 읽습니다. 어험어험 헛기침을 지으며 읽습니다.

     “솨아솨아 춤을 추는 포푸라 나무  
     까치까치 까치님 안녕하셔요.
     초이렛날, 별 밝은 칠월 칠석에
     올해도 까치님을 기다립니다.
     애타게 기다리던 견우 직녀님
     만나고 싶어도
     강물은 깊어
     소롱소롱 흐르는 은하숫물에
     한 해에 한번 놓는 까치의 다리
     올해도 모두 와서 놓아주셔요.“

  편지 사연은 이러하였습니다.
까치는 하늘에 가서 두 별님을 도와드리는 것이 마음에 기뻤습니다.
까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편지를 또 한번 또 한번, 달빛에 비추면서 읽었습니다.

     똑똑똑 똑똑똑
     계십니까 까치님
     주므십니까.

  문득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어렴풋이 들렸습니다.
  “네, 누구십니까.”
까치는 읽던 편지를 손에 든 채 문을 열었습니다.
바깥은 멀거니 푸른 달밤이었습니다.
모두 달빛에 녹아버린 것처럼 어디까지나 푸르기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찾아온 손님이란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까치는 돋보기 안경을 벗고 다시 한번 살펴 보았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아까 부엉이가 섰던 자리는
비를 맞은 모양으로 달빛에 흠뻑 젖어 보였습니다.
생각 없이 얼굴을 드니까, 바로 머리 위를 외롭게
하이얀 은 싸라기 은하수 물이 소리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칠월 칠석의 전날 밤이었습니다.  
      



  
아기 구름
            정원석

   안녕.
   안녕. 안녕하셔요.......

  먼 하늘에서 조그만 젖빛 구름이 흘러왔어요.
  난지 얼마 안 되는 아기 구름인게지요. 생글생글 생글생글 웃지 않겠어요.
  아마 걸음마도 잘 못 하나봐요. 바람이 밀어주는 대로 도옹동 도옹동 떠 왔어요.
  아기 구름은 이게 나서 처음 가는 나들이랍니다. 혼자서 가다니 아주 장하지요.
  바람이 세게 불어주었으면 더 빨리 갈 수 있을 텐데요. 바람은 장난꾸러기니까 또 어디선가 한눈팔고 장난치고 있는가 봐요.

  아기 구름은 혼자 가도 조금도 심심치 않았어요. 왜냐하면 땅 위에 아기구름의 그림자가 강아지처럼 쫄래쫄래 따라오거든요.
  살그머니 아기 구름이 수풀 사이 조그만 오솔길로 가지 않겠어요.
  아, 그럼, 그림자도 그 뒤를 쫓아서 살그머니 따라온답니다.
  아기 구름은 엷은 포도빛 기림자와 참 사이가 좋았어요.
  그래서 어디든지 같이 데리고 다녔어요.

  아기구름의 그림자는 배추밭에 노란 배추꽃이 피어 있으면,
  꽃내를 하나 하나 맡아봤어요.
  시냇물에서 살금살금 미역도 감고 징검다리도 깡충 뛰어 건넜지요.
  아기 구름은 지나는 산봉우리마다 소곤소곤 쉬었어요.
  아직 어리니까 잠깐 쉰다는 게, 아 그만 새록새록 잠들어 버리기도 했지요.
  한참 가다가
  조그만 마을을 하나 지나치려니까 후리후리한 미루나무 누나가 서 있어요.
  웬일인지 파란 잎사귀 옷을 솨아솨아 흔들고 있었어요.
  아기구름은 미루나무 누나에게 인사를 꾸벅 했어요.

   “안녕, 안녕 누나.”
   “안녕, 안녕 아가.”
  미루나무 누나는 웃으면서 눈짓으로 대답했어요.

   “그런데 누난 왜 몸을 흔들고 있수,”
   “쉬이이”
   미루나무 누나는 손을 입가에 대고 조용히 하라고 했어요.
  그리고는 자직하게
   “아, 자장 자장 아기 재우려구.”
   “그럼 누나가 애기 낳았수,”
  아기 구름도 조그만 소리로 물었지요.
  “아아니, 우리 집 까치 아줌마가 아기를 낳았단다. 참 우리 아기 보여주랴.”

  모두 일곱 마리였어요.
참 귀엽게도 생겼지, 저절로 웃음이 돌았어요.
  “ 어때. 아가, 모두 예쁘지, 지금 모두 코오코 자고 있지,”
미루나무 누나가 가만가만 얘기했어요.
  “쉬이, 아기 잠 깰라.”
  아기 구름은 손가락을 입에 대고 눈짓하면서 생글생글 웃었어요.

   미루나무 누나는 파아란 잎사귀 옷을 사른사른 흔들었어요.
  아기 구름은 그 옷 빛이 마음에 퍽 들었거든.
  “누나 옷 빛깔이 참 좋네.”
  “그래, 그렇지만 나는 도리어 네 흰 옷이 부럽다우.”
  미루나무 누나는 잠깐 웃는 것처럼 했지요.

  바람이 또 불어오는군요.
  아기 구름은 또 가야겠어요.
  도옹동 도옹동 가는 거지요.
  그림자를 데리고 가는 거지요.

       안녕,
       안녕, 안녕하셔요.....

  시골길에서, 미루나무 꼭대기에 아기 구름이 이렇게 쉬어 가는 것을 여러분은 보신 적이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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