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노래

by 박경숙 posted May 0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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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무를 저며 채를 썰다가

텅 빈 고춧가루 통을 본다

냉동실 깊이 뒀던 비닐보퉁이 꺼내

한줌 남은 고춧가루를 빈 통에 털어 넣는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행위 속에  

문득 내 옆에 살아나시는 어머니



벌써 언제던가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

고향집 대문간에서 나를 배웅하며 싸주시던

커다란 고춧가루 봉지

멀리도 가져와 아껴, 아껴 먹어온 게

어느새 몇 년인가

어머니의 사랑을 야금야금 챙겨먹듯

콩나물을 무치고 육개장을 끓이고…



이제 다 털어낸 고춧가루 속에 어머니는

영 가신 걸까

지천명 이날까지 어머니의 고춧가루로

이어져 온 나의 삶

당신 없이 사는 법은 아직도 서투르기만 하다



아아 또 5월인데 당신께 드릴 게 없다

받기만, 받기만 하다가 보내버린 어머니

한평생 붉은 고추 말리고 빻아

여섯 자식 사랑을 대시던 어머니

이제껏 붉은 고추 한 번 말린 적도

빻아본 적도 없는 나는

어머니의 유품으로 무생채를 버무린다



곱게 버무려진 생채나물 태연히 식탁에 오르고

창밖엔 고추처럼 붉은 꽃이 피었다

시큰한 코끝으로 대롱대롱 맺히는 눈물



꽃이 너무 맵다

5월이 너무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