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고백

by 박경숙 posted Mar 2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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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백성사 2005 봄-


부활을 앞둔 삼월,
펼쳐진 책 속엔
오래 전 삼월의 만세운동에
목이 잘린 얼굴들과
죄수복 입은 유관순 누나
십자가 당신보다
슬프고 끔찍한 1919년의 삼월을
더 생각해온 사순절이었다

십자가 앞에 수없이 무릎 꿇었어도
당신 살을 뚫는 못 치는 소리
그 아픔보다
내게로 날아와 앉던 시린 꽃가루
가슴만 아프던
참으로 몹쓸 봄날이었다

삼월에 교묘히 들끓는
동해 바위섬 이야기
왜놈들의 작두날에 목이 잘렸다는
옛날 삼월의 사진을 다시 바라보며
그 왜놈들을 욕해보던 봄날이었다
내 가슴속엔
주인 없는 바위섬 하나 솟아나
외롭다 소리쳐도
동해 바위섬은 엇갈리는 주인 때문에
더 외로워진
참으로 씁쓸한 봄날이었다

허무를 가르치던 Ash Wednesday에서
올리브 가지 흔드는 Palm Sunday까지
봄빛은 너무 자주 깨어졌고
비는 너무 많이 내렸고
십자가는 너무 기뻤고
세상은 너무 들썩였다

3월 내내 유관순 누나는
책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목이 잘린 애국자들은
바라볼 곳도 없이 초점을 잃고 있다
이렇게 또 부활은 다가오고
수난하지 않았기에 부활할 것도 없는
통회하지 않았기에 부활할 것도 없는
공허한 영혼들이
실은 꺼이꺼이 울면서도
제가 울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봄 햇살 같은 미소를 짓는다

웃으며 울며
깊어가는 봄날,
나의 바위섬 너머
동해의 바위섬 너머
유관순 누나 너머
가까스로 바라본 십자가
봄 햇살 그리 자주 깨어질 때마다
가난해 지던 나의 영혼
다 아시는 당신은
초라할수록 깊어지는
아름다움을
배우라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