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15.07.29 06:49

다람쥐와 새의 '가뭄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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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부족 해소에 동조하는 마음으로 잔디와 나무에 물 주는 횟수를 줄였다. 그래도 뒷마당 나무들은 뿌리 깊은 곳에 비축해 놓은 물을 뽑아 올린 듯 작년과 다름없이 이파리 무성하고 열매는 튼실하게 커가고 있다.

한발 앞서 열매를 콕콕 찍어놓는 녀석들 때문에 저 열매가 내 것이 될는지는 두고 봐야 한다. 뺏기지 않으려고 신문지나 비닐봉지로 꼭꼭 싸 보았지만, 봉지를 물어뜯고 실과를 빼가는 데는 두 손 들었다. 몇 년 사이에 다람쥐나 새 같은 작은 동물들이 왜 이렇게 극성을 부리는지 모르겠다. 몇 해 전만 해도 탐스러운 포도가 늦가을까지 주렁주렁 달려 있었는데 먹어 치우는 정도가 해마다 심해지고 있었음을 이제야 눈치챘다.

절수를 강권하는 공익광고를 듣고 나면 물을 한껏 준 듯한 그림 같은 초록 잔디도, 땅바닥이 드러날 듯 내팽개쳐진 누런 잔디도, 최근에 깐 듯한 깔끔한 인조잔디도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다. 물 주는 횟수를 조금만 줄여도 빛깔이 달라지는 우리 집 잔디를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시청에 가서 인조 잔디 지원에 관해 알아보고 인조 잔디의 장단점을 인터넷에서 검색도 해본다. 예전에는 다른 종류의 잔디가 섞여 있으면 잡초라고 뽑아버렸는데 이젠 잔디면 되지 뭘 하면서 그냥 넘어간다. 가까스로 목숨 보전한 잡초의 초록빛이 더 짙다는 것도 알게 된다.

물기 없는 인조 잔디와 물 부족으로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를 상상하면, 생기로 마당을 가득 채우는 다람쥐와 새에 대한 마음이 조금 달라진다. 열매가 없다면 그들은 오지 않을 것이다.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생명들을 떠올리며, 잊지 않고 다시 와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마켓 가면 비싸지도 않은 과일인데 뭘 그렇게 안 뺏기려고 아등바등대나 싶다. 하지만 온통 입질해 놓는 바람에 과실 알맹이가 뭉그러져 달콤한 맛을 찾아 날아든 날 파리떼를 생각하면 그냥 둘 수도 없는 일이다. 나무 전체를 뒤집어씌우는 망을 살까, 작년의 고민 올해도 계속된다. 자연 위에 인위적인 것으로 덮어버린 모습이 흉할 것 같아 또 보류다.

잔디 뿐 아니라 점점 심해지는 다람쥐나 새의 과실 밝힘증도 수분 부족에서 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과실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영물이니 사람보다 한발 앞서는 것은 당연한 일일 터이다.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물 부족으로 인한 불편을 겪으며, 살아있는 것은 모두 공생공존의 관계라는 것을 또 깨닫는다. 물 부족 현상이 더 심각해져서 예측하기 힘든 어려운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고개 들어 하늘을 본다.

연일 한국 무더위 저리 가라는 듯 후텁지근하다. 물 타령 더위 타령 하던 차에 다행히도 단비가 쏟아졌다. 주일 오후 잠깐 다녀간 것 같은데 폭우였으며, 기록적인 7월 강우량으로 산사태와 도로 유실 등 피해가 많았다고 한다. 비가 지나치게 오지 않는 것도 또 지나치게 많이 오는 것도 이상기온이 원인인 모양이다. 우린 대부분 이상이 있어야 일상의 소중함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펑펑 써대는 물이 없어질 수도 있는 거구나, 나 또한 이번에 알았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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