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나무 선술집

2006.03.24 09:50

강성재 조회 수:706 추천:66

별들이 봄을 학살하던
일구팔공년 그해의 봄
나는 통나무 선술집 구석방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유리창 너머로 영호루 누각이 어슴프레 보이고
깜깜한 어둠에 잠긴 낙동강에서
비상계엄, 비상계엄
술독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웃음 살살 흘리며 주점 구석구석을 누비는
주막 아낙의 구성진 동백아가씨를 들으며
나는 밤하늘에 무수히 떨어지는
꽃잎들을 보았다

봄을 위하여, 봄을 위하여
텁텁한 막걸리에 취해가던 밤
이름마져 두려웠던
그 봄이 가슴저리게 그리워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
주점의 안방까지 밀고 들어왔던
별들의 살벌한 군화발을 떠올리고는
까무라치게 놀라
엎드려 숨을 죽였다

언젠가 술에취해
썩은 시체냄새 진동하는 토사물을
하나가득 게워놓고 비틀거리던
주점의 입구에
오롯이 다시 서서
아직도  귓가에 남아있는
봄을 위하여
나는 소리없이 만세를 불렀다

흐릿한 달빛아래
살떨리는 두려움이 깊어가던 밤
속절없이 짓밟히는 꽃잎들이 서러웁고
술독속에 숨어버린 내 모습이 너무 싫어
배고픈 내 여인의 젖통같은 술사발을 엎어놓고
꺼이 꺼이 통곡을 쏟아내다
얼떨결에 주막 아낙의 품속에서
하룻밤 젊음을 묻어 버렸던
안동 낙동강변의 통나무 선술집



·        영호루 :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                        조선시대 영남3루로 불리었던
·                        겅북 안동의 낙동강변에 있는 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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