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

2006.12.24 12:15

강성재 조회 수:402 추천:90

집집마다 찬바람에
문풍지 찢어지던
언덕배기 산동네
살얼음 사각 사각 밟히던 골목길을
밤마다 찹쌀떡 메밀묵
소리치고 다니던 아이
초등학교 삼학년이던 아이는
제 덩치보다 더 큰 목판을
하나는 품에 안고
하나는 등짐을 지고
찹쌀떠억 사려…어
메밀묵 사려…어
얼어붙은 이빨 사이로
삭풍에도 꺼지지 않는
어린 꿈을 팔았다는데
지고가는 멍에 많큼이나
무겁고 어두웠던 골목길을
통금 싸이렌이 울릴때 까지
동동 거리고 다녀도
한끼 떼울 시커먼
보리쌀 한봉지 살 돈도
못 벌 때가 많았지
불기 하나 없는 냉골에서
떨고 있을 어머니와 동생들 생각에
아이는 언제나 마음이 바빴어
팔다 남은 찹쌀떡 몇개
제 허기는 잊은체
똘망 똘망 기다리다 지쳐 잠든
동생들 이불속에 넣어 주고
한데보다 따실것 별로 없는
웃묵에서 새우잠이 들었지
어쩌다 짊어진 떡판 떨이하는 그날은
화덕에 빠알갛게 피어 오르는
연탄불 보다 더 따뜻한 밤이었어

그 아이
멀리 성탄절 불을 밝힌
교회당의 십자가를 보면서
꽁꽁 얼은 손 모아 기도하던 아이
얼음속에서도 피어나는 모닥불이고 싶어
눈 보다 더 환한 꿈을 키우던 아이

지금 그 아이,
따뜻한 보일러 방에서
추억에 젖은  메밀묵을 먹으며
그 옛날의 눈물을
시로 쓰고 있네

찹쌀떠억 사려…어
메밀묵 사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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