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이야기 (2)

2007.03.09 13:05

강성재 조회 수:449 추천:114

먼 바다 한가운데 고래의 등에 올라 앉아 잠자는 해초들을 깨우며
섬과 섬들을 지나 파도를 일으키며 달려 왔을 것이다
어느 깊은 산속 호수에 잠든 백조의 깃털을 조용히 흔들면서
일어났을 것이다 숲속에 앉은 나비의 날개를 살짝 깨물며 좋은아침
인사를 나누며 하루를 열었을 것이다

절벽을 비상 해 오르는 검은 독수리를 닮은 놈이거나
깊은 동굴속 어둠에 활개치는 박쥐를 닮은 놈이거나
혹은 낡은 초가지붕 밑을 파고드는 어린 참새의 깃털을 닮은 놈이거나
그러나 언제든 하나의 길과 하나의 혼과 하나의 의지만을 생각 하며
광폭의 목소리로 산에서 강에서 바다에서 포효 하면서
봄이면 풀잎 소리로 여름이면 야수의 소리로 가을엔 낙엽소리로 겨울엔
눈의 소리로 펄럭이고 찢어지고 휘몰아치면서 들녘을 짓밟고 도시의
불빛을 깨트리며 혹은 숲속 이슬위에 잠든 새들의 깃털을
쓰다듬어 주면서 더운 입김으로 혹은 차가운 입김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낙엽을 태우기도 하면서
그 격정과 사랑과 분노를 삭혔을 것이다

그리하여 무엇이 남았는가
다시 물이요 산이요 온전한 사계의 순환일뿐

바람이여
강기슭 따라 출렁이는 물안개 걷어 올리며 나무위에 잠든
어린 참새의 아침을 깨워 일으키는 그런 모습으로만 남아 있으라
청아한 목소리로 백조의 깃털을 흔들면서 찬이슬 위에 고요히 잠드는
마지막 숲의 숨소리로만 너를 기억하게 해 다오
너의 자유위에 아름답게 익어 가는
세상을 보고 싶은 것이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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