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농부의 생애

2008.07.08 14:38

강성재 조회 수:442 추천:100

그의 밭에는 언제나
잡초가 넘처난다
꼭두새벽 부터 쟁깃날 무디어지도록
갈아 엎어도 무성하다

밤새 선잠도 들지 못하고
끙끙 앓아대던 시름 하나 꺼내
밭뙤기에 엎어 갈아도
마음은 편치 않다

그의 그림자가
그의 너울을 안고
쟁기날을 새웠다

자빠지고 뒹굴면서도 그는
갈아 엎는다
돌덩이도 갈아엎고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도 갈아엎고
우루과이 라운드도 갈아엎고
천덕꾸러기 한우(韓牛)도 갈아엎고
뼈마디 부서지게 갈아엎어도
세상길 막막하다는
자식놈 앞길도 갈아엎고

손주녀석이 날린 꼬리연이
잡초 하나를 꼬리에 달고
그의 밭고랑을 가로질러
하늘을 날아 오른다

아직 못다 엎은 잡초더미
한지게 가득 등에 올린채
인생의 끝머리에 섰다
천형처럼 지고 가는
기나긴 잡초 고랑 사이로
찢긴 노을 타오르고
이제 더 갈아엎을 기운도 없어
자신의 생애를 밭고랑 사이에 눞히고
갈아 버리는 늙은 농부의
휘어진 등너머로
찢어진 노을이 황혼을 기웃 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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