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초상

2008.08.02 14:56

강성재 조회 수:484 추천:91

일찌기 아버지가 어린 나에게
날마다 뒷산에 올라 소 꼴을 베라 하신것은
아버지의 소를 살찌우기 위해서 만은 아니였다
허수아비 팔위에 걸터 앉아
먹이를 쪼아대는 참새떼와
질화로 보다 뜨거운 뙤약볕에서
하늘에 절하듯 엎드려
한해의 양식을 만드는
서럽도록 아름다운 농부들의 노고를
온 몸으로 배우라는 것이였을 것이다

소 꼴 베다 내려다 보면
외줄기로 흐르는 강기슭 따라
올망졸망 푸른 논과 밭
그곳에 허리숙여
먹이를 살피는 학처럼
밭을 갈던 아버지

오정(午正)때가 되면
면사무소 철탑위에서 싸이렌이 불었다
철없는 아이들은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지
부자양반 밥 많이 먹고
가난한놈 밥 굶어라
오오웅--- 오오웅----
싸이렌이 불면 괜시리 배가 고팠다

찢어진 옷자락이 나뭇가지에 펄럭이던
뒷산 언덕
무너져 내린 누구의 무덤가에서
콩이삭 보리이삭 구워 먹던
죄 없이 입만 크던 우리 형제들
아직도
그 언덕아래 아버지는 가난하고
우리의 입은 가진것 없이 크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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