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앓이

2008.10.13 14:43

강성재 조회 수:550 추천:106

나는 밤마다 아내 몰래 수음을 한다
한밤을 꼬박 세운 속앓이의 배설물에서
진한 밤꽃 냄새가 난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비밀의 찌꺼기를 밀어내며
어김없이 찾아와 창문을 두드리는
새벽을 맞는다
기지게를 켜며 뒷목에 손을 뻗는다
바위보다 단단한 목덜미가 잡힌다
“스칼라 믹스 디마”라 했던가
아주 희귀한 병으로
피부를 바위처럼 단단하게 만들고
종당에는 내장까지 바위덩어리로 만들어
치유불능케 한다던가
이름마져 생소한 병명을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던
늙은 의사가 생각나
쿡 하고 웃음이 나온다

이십몇년 이민생활에
거칠게 혹사당한 육신의 껍데기는
서서히 죽어 가면서
심장을 난도질하고 있음을 몰랐다

바위가된 껍데기는 빠른 속도로
심장을 갉아먹고
저항의 의지를 상실한 심장이
비명을 지른다
심장이 내지르는 비명을 들으며
불면의 밤을 세운다는건 잔인하다
불면은 호사가들이나 누리는
생체기쯤으로 알았다
이쯤에서
돌덩이가 된 육신과
가슴앓이에 지친 심장이
분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그것은 내 몫이 아니다
신의 고유한 영역이다

가슴앓이가 심한 밤엔 시계소리마져 거슬린다
심장을 갉아먹는 초침의 움직임이
색깔을 바꿔 가면서
문 밖을 서성인다
굴절된 일상들이 시계추에 걸려 펄럭인다

새벽이 와도 새벽일 수 없는 나날들
나, 떨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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