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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엔 지금도 흰구름이 떠돌고
- 광주항쟁과 Mt. St. Helen 폭발 25주년에
  오정방
    

나는,
광대한 태평양으로부터
내륙으로 올라 온
아름다운 구름의 옷으로 늘 싸여 있었고
영국인 선장 조지 밴쿠버에 의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이래
어쩌다 구름에서 벗어나
완벽한 내 모습을 보여줄 땐
산 아래 모든 사람들이
‘과연 굉장하다’
감탄하는 소리를 듣고 또 들었었지

카나다에서 남으로 내리 달려
캘리포니아까지 이르는 미 서부
캐스캐이드 산맥가운데
태고 적부터
워싱턴주의  레이니어 산 남쪽에
오레곤주의 후드산 북쪽에 앉아
눈아래 내려다 보이는
수많은 낮고 낮은 봉우리들과 벗하며
평화롭게 지금까지 잘 지내온거야

나는,
언제나 하얀 백발을 이고
아무 부러울 것 없이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이
욕심도, 미움도, 시기도, 질투같은 것도 없이
자연 그대로 고고히 살아온거야

아아, 세상 사람들
제 갈 길이 너무 바빠
기억 속에 희미한 먼 먼 옛날 같지만
1980년 봄, 나는 단잠에서 깨어났고
드디어 20년 전 바로 오늘 5월 18일,
가슴을 찢고 피를 토할 수 밖에 없었던
그럴만한 이유가 내게 있었던거야

동방의 작은 나라,
그러나 드없이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전라남도 광주라는 작지 않은 도시에서
형제가 형제의 머리에 총부리를 들이대고
친구가 친구의 가슴에 돌멩이를 퍼붓던 날
이름하여 광주항쟁이 일어난
바로 그 해, 그 달, 그 날에
나는 그 슬픈 소식에 속이 뒤짚혀
안타깝고, 애처롭고, 비통한 마음을 참지 못해
함께 머리를 깨고 가슴을 찢어
마침내 폭발하고만거야

나의 지울 수 없는 상처는
세월이란 약으로 이제 아물어가고 있지만
내 머리와 가슴은
억겁의 세월이 흘러가도
옛모습을 영영 회복할 수 없을거야

인간들이여,
이젠 이 아픈 기억 모두 무덤 속에 깊이 묻어두고
아니, 깊이 묻어뒀다는 기억조차 모두 망각해 버리고
지금부턴
두루 두루 용서하며 살자
오손 도손 사랑하며 살자
                            <2000. 5. 18>

                      -졸시 ‘오손 도손 사랑하며 살자’ 전문

위의 졸시는 5년 전 5월 18일, 시애틀 부근에 있는 세인트 헬렌 산이
처음 폭발한지 20주년을 보내면서 서북미에서 발행되는‘기독신문’의
청탁으로 써서 필자가 이 산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과 함께 특별기고로
게재된 작품이다.
오늘 다시 5월 18일이 돌아와 헬렌 산 폭발 25주년, 4반세기를 맞는다.
작품 속에서도 나타나 있지만 처음 폭발했던 ‘80년 5월 18일 그 날은
바로 광주항쟁이라 일컫는 대사건이 광주에서 있었던 날이라 두 사건을
나는 함께 묶어서 기억하고 있다.

필자는 ‘87년에 서북미의 오레곤주 포틀랜드로 이민을 왔기 때문에 두
사건을 모두 서울에서 만났거니와 이민 오던 그 다음해로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예닐곱 번 이 헬렌산을 다녀왔는데 갈 때마다 조금씩 자연이
회복되는 것을 보면서 정말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 볼 때는 자연의 위력과 인간의 무력함을 느끼었고 시간이 흐를
수록 자주 가보게 되니까 인간의 옹졸함과 자연의 느그러움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와 같이 만사는 다 이중성이 있는가보다.

물론 달아난 산봉우리는 원상복구가 안되는 일이지만 주변의 자연환경은 처음에 볼 때보다 참으로 많이 달라졌고 자취를 감추었던 동물들도 엘크, 곰, 산양순으로 다시 찾아와 서식하고 있는데 산양은 10년이 지나서야 찾아왔다고 하며 현재 엘크의 숫자는 2천여수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또 다시 폭발이 있을 것을 대비하여 과학자들은 면밀히 주시 관찰하고 있는데 작년 9월과 10월에 그 징조가 좀 활발하다가 금년 3월 쯤에야 활동이 좀 줄어들었기로 이달 들어 입산이 재개되었다.

오늘, 그 날로부터 25주년을 맞으며 5년 전의 시 한 편을 새삼 읽어보게
되거니와 광주 망월동의 하늘은 지금 맑고 푸른지? 유족들의 상처는 과연 얼마만큼 치유되었는지 궁금하다.
여전히 세월이 약이라는 말과 세월이 광음같다는 말을 실감하면서…

                                                    <2005. 5. 18>


  



  ⊙ 발표문예지: 문학의즐거움/FM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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