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과 셰익스피어

2015.08.26 05:10

김학천 조회 수:58

  옛날 어느 마을에 두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너무도 가난하여 어느 날 먹을 것이 없자 배고픔에 못 이겨 양을 한 마리 훔쳤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잡아‘양 도둑(Sheep Thief)’이라는 뜻으로 이마에‘ST’라고 낙인을 했다.
  그 후로 그들은 항상 양 도둑이란 오명으로 멸시와 냉대 속에서 살아야 했지만 한 젊은이는 한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마을을 위한 일에 발 벗고 나서며 묵묵히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성실하게 살았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의 머리도 희끗희끗 흰머리로 덮여가고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의 이마에 선명한 ST는 더 이상 양 도둑의 표시가 아니라 성인(Saint)을 뜻하는‘St.’로 읽혀졌다. 또 다른 젊은이는 질시와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마을을 떠나 돌아다니며 같은 짓을 일삼다가 끝내 낙인을 지우지 못한 채 삶을 마감했다. 지울 수 없는 낙인을 갖고도 어떠한 삶을 사느냐는 자신에게 달려있음이다.
  헌데 실제로 절도범의 낙인을 지우고 훌륭한 문학도로 다시 태어나는 인간승리가 일어났다. 인디애나 주립 대 영문학 교수이자 셰익스피어 연구가인 로라 베이츠는 자원봉사로 교도소에서 셰익스피어 프로그램을 교육했다. 맥베스나 오셀로, 햄릿 등 작품들 속의 인물들이 저지른 비극을 수감자들의 죄와 연관시킬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그러던 중 인디애나 주 교도소 중에서도 최악의 죄수들만 격리 수용하는‘수퍼맥스’를 방문했다. 거기서 그녀는 복도 한 가운데 앉고, 죄수들은 복도 양 옆으로 나란한 독방 안에 갇힌 상태에서 작은 문구멍을 통해 토론했다.
지하 감옥에 갇힌‘리처드 2세’의 독백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왜 맥베스가 던컨 왕을 살해하기 전에 고뇌했는지, 왜 로미오가 줄리엣의 오빠에게 결투를 신청했는지 등 많은 소재로 매주 10년간 진행했다.
  무기수 래리 뉴턴도 거기 있었다. 빈민가 흑인 동네에서 태어난 그는 가정폭력을 피해 가출을 여러 차례 거듭하면서 초등교육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10살 때 절도로 처음 체포된 후 소년원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러다가 17세 때 대학생을 총기로 살해 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 받고 10년 이상 독방에 갇혀 지내왔다. 그는‘킬러 독(살인견)’이라 불리며 독방에 갇혀 매일 자살하거나 일을 저질러 사형당할 생각에만 몰두했다.
  그랬던 그가 생전 알지도 못했던 셰익스피어를 만나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진정한 자유’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래리는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삶을 구했다고 여교수에게 고백했다. 셰익스피어를 알고 10년이 지난 후 그는 독방에서 풀려났고 여교수와 함께 같은 처지의 재소자들을 위한 셰익스피어 프로그램 책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제 문학박사의 꿈도 키우고 있다.
  어찌 보면 햄릿의‘덴마크가 감옥이다’라는 말처럼 감옥 밖에 사는 우리 모두도 나름대로의 낙인을 하나씩 가슴에 품은 채 각자의 감옥 속에 갇혀 사는 존재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낙인을 지워가며 삶을제대로 꾸며가고 살고 있는지 아니면 살지 못하고그나마 그 기회마저 덧없이 흘려보내면서 점점 더 깊은 독방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닐는지.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7 이브여 그대는.. 김학천 2012.05.26 451
86 아리랑 김학천 2012.06.20 425
85 안경 김학천 2012.06.22 591
84 다윗과 조나단 김학천 2012.08.01 747
83 이 땅에 사는 우리 김학천 2012.08.01 371
82 영곤이 이야기 김학천 2012.08.08 549
81 다르다와 틀리다 김학천 2012.08.08 477
80 우아하게 여행하는 법 김학천 2012.08.11 401
79 커피 김학천 2012.09.26 439
78 천사들의 도시 김학천 2012.09.26 429
77 생전의 장례식 김학천 2013.02.22 347
76 삶과 박자 김학천 2013.05.03 321
75 눈동자 김학천 2013.05.25 320
74 버킷리스트 김학천 2013.07.05 270
73 무명과 유명 김학천 2013.07.26 341
72 어느 라디오 앵커맨의 사모곡 김학천 2013.08.30 304
71 Liberty와 Freedom의 차이 김학천 2013.10.04 1337
70 죄수아버지의 여름캠프 김학천 2013.10.28 287
69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자의 죽음 김학천 2013.12.17 419
68 생존을 넘는 삶 김학천 2014.03.11 320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54,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