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어 줘서 고마운 핏줄

2015.09.05 11:10

노 기제 조회 수:380




20150715                    살아 있어 줘서 고마운 핏줄


   “삼촌은 안 되는데, 갑자기 생활비를 줄이면 삼촌은 안 되는데, 어떻게 하나. 고모, 그 깍인 부분을 태진이랑 의논해서 우리가 맡아볼께요.”

   

   조카 선민이의 근심 어린 음성이 잠깐 나를 멈추게 한다. 저 살기도 헉헉대는 형편에 선뜻 삼촌 생활비를 보태겠다니, 야박한 결정을 내리는 고모에게 경고장을 날리는 모양이다. 그러나 말려들지 말자. 너 살기도 힘든데 그냥 내가 할게. 그런 소리? 천만의 말씀이다.


   선민이와 태진이는 큰 오빠 자식들이다. 겨울 생인 큰 오빤, 그 겨울 생일이 되면 만 스물아홉. 세 살짜리 딸 재롱에 만족하지 못하고 아들타령을 끊임없이 하더니 드디어 튼실하고 인물이 특출한 아들을 얻었다. 그리 소원하다 얻은 아들의 첫 돌 잔치도 못 해 줬다. 난 데 없이 위암 말기. 딱 6 개월 남았다는 미군부대 소속 미국인 의사의 진단을 받고 투병 중 이었다. 하루의 오차도 없이 6 개월 후에 오빤 떠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토끼 같은 새끼 둘을 울 엄마에게 맡겼다. 애들 에미는 잘 데리고 계시다 애들 학교 들어가면 보내시라고 여우같은 마누라까지 엄마에게 부탁하고, 봄이 영글어 여름을 준비하던 6월 중순 어느 날 몰핀으로도 벗어나지 못하던 통증에서 해방 된 것이다.


   큰 오빠를 보내 던 날, 영구차에 매달려 두 주먹이 으서져라 차를 치며 통곡하던 작은 오빠의 절규가 지금도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


   “형, 형, 형아, 혀엉............”


   두 살 터울 진 오빠들 사이는 내가 잘 모른다. 둘이 다투거나 싸움질을 하던 모습은 전혀 기억에 없다. 작은 오빠 아래로 두 살 터울로 언니가 있었는데 9 개월 살고 병사 했단다. 엄마가 안고 찍은 사진도 있다. 언니 다음으로 4 년 후, 내가 태어났다. 결국 6년 차이인 작은 오빠와 나만 살아남은 셈이다.


   큰 오빠 간지 한 달도 안 돼서 새 언닌 친정에서 데려 갔다. 태진인 겨우 첫 돌 지냈으니 딸려 보내고, 선민인 우리 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와 살게 됐다. 그도 잠깐, 새 언니의 행보가 혼자 지낼 수 없는 어린 나이니, 남정네와의 데이트 현장을 목격한 울 엄마가 태진이 마저 데려 와서 두 조카들과 결혼 전까지 함께 살았다. 7년 동안 애들 학교 쫒아 다니고, 채벌 심하게 하면서 애비 없는 새끼들이란 소리 듣지 않아야 한다며 엄하게 키웠다. 오죽하면 울 엄마, 눈물 빼며 내게 던진 말씀. 시집가서 네 새끼나 그렇게 엄한 교육 시키라며 매를 뺏던 일이 아직도 선민이 태진이에게 미안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정말 내가 배 아파 낳은 자식에겐 그리 채벌 할 수 없단 말인가? 증명 할 수 없는 무자식인 나의 삶이고 보니, 난 그냥 떳떳하다. 내 자식이라도 그리 했을 거라고.


   내가 결혼과 동시, 미국 이민으로 애들 곁을 떠나고,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삼촌과 함께 청소년기를 지낸 선민이 태진이를 생각하면 내 가슴은 항상 아리다. 같은 땅, 한국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는 체감하지 못했다. 애들의 성장 과정을 자세히 적어 보낼 수 없는 울 엄마 심정 역시 아프다. 미국이란 낯선 땅에서 삶을 일궈가는 막내딸인 나의 형편을 짐작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같은 패턴의 삶을 산다. 부모 곁을 떠나 배우자를 만나서 자신의 가정을 이루게 되면 그 가정이 최우선 순위가 되어 양분을 주고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기에 혼신을 다 한다. 그렇게 패턴을 따라 살다 보면 예전의 우선순위가 점점 밀리는 순위로 바뀐다. 그러기에 선민이 태진이가 장성해서 각각 자신의 가정을 이루고, 허덕대며 보통 사람의 삶을 살고 있는 상황에서 누구를 돕는다는 여유 있는 계획을 세울 수 없음을 나는 안다. 지극히 보통 사람의 생활이기 때문이다. 딱히 급전 한 푼 빌릴 곳 없는 생활. 누구 한 사람 공돈처럼 몇 푼 쥐어 줄 수 있는 사람 하나 없는 환경. 그런 중에 한 가닥 의지 할 곳이라면 삼촌인 나의 작은 오빠와 고모인 내가 있다.


   선민이 태진이의 삼촌인 나의 작은 오빠는 이미 기초 생활 수급자로 75세의 독거노인이다. 모아 놓은 재산은커녕 혼자 몸 하나 거처 할 곳 없어 내 도움으로 사글세 옥탑 방에서 기거한다. 다행히 한국의 복지 제도가 내가 사는 미국 보다는 훨씬 좋다. 의료비 걱정 없이 아프면 병원 간다는 소식에 마음이 놓인다. 작은 오빠를 돕는 날이 길어지면서 내게도 어려움이 짙어 진다. 나도 일찍 은퇴를 해서 수입이 없는 상황이다. 남편이 아직 일을 하지만, 이런 형편에서 작은 오빠를 계속 돕는다는 것이 무리임을 판단하면서 송금 액수를 줄이기로 했다.


   시댁인 미국 노스다코다(North Dakoda)로 이민 와서 사는 선민이가 먼저 반응을 보내 왔다. 한국에서 기초수급자가 받는 생활비만으론 도저히 살 수가 없고, 고모가 보내주는 돈으로도 삼촌이 그리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건 아니란다. 그런데 거기서 삭감이라니, 삼촌이 견딜 수가 없을 거라는 얘기다. 그럼, 나더러 어떡하라고?


   단호한 내 태도에 낙망하던 작은오빠가 잠깐 원망스러웠다. 당황하며 삼촌 걱정을 앞세우던 선민이 말도 서운했다. 뭔가 나만 이렇게 희생을 해야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여기는 마음들인 것이 느껴진다. 그래도 할 수 없다. 나 살기도 어렵다. 내게 의지 하지 말고 하늘에 맡기고 도움을 청해라. 각자 자기의 필요를 하늘에 구해라. 나는 더 이상은 못하겠다.


   야속한 마음, 섭섭한 감정, 그래도 짠한 마음이 뒤범벅이 되어도 계획대로 실행했다.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선민이가 매달 100불씩 보태겠다며 수표를 보내왔다. 한국에 있는 태진이는 매달 십이만 원씩 삼촌에게 직접 전달한단다. 과일도 사들고 오고, 두유도 사갖고 오고 갑작스레 조카에게서 효도를 받으니 너무 좋다고 오빠에게서 전화가 온다.


   무섭게 매를 들고, 따끔하게 가르치던 내 속마음이 상급을 받는 순간이다.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희열을 맛보며 감사를 하늘로 올린다. 불우했던 가정환경을 딛고 가슴 따스한 인간으로 성장해 준, 선민이 태진이에게 성격 까칠한 고모가 너희들 무척 사랑하고 있음을 알린다. 이런 기분이 바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표현을 끄집어내는 걸가? 이렇게 나를 고단하게 하는 작은 오빠지만, 일찌거니 떠난 큰 오빠보다는 삶의 끄트머리까지 곁에 있어 줄 작은 오빠가 훨씬 고맙고 좋다.

  

   그 어린 것들이 벌써 50을 바라보는 중년이 된 선민이 태진이, 내 피붙이들, 이름을 부르며 고마움을 전할 수 있음이 내겐 하늘이 허락하신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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