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고 수

2015.11.28 06:51

이성열 조회 수:106

고수/ 이성열

 

그는 영락없는 홈리스(거지)였다. 후즐그레한 옷차림하며 턱에 몇 개 남지 않은 터럭이 바닷바람에 절고 강한 햇볕에 그을어서 있는 둥 없는 둥 바람에 날렸다. 나이는 못됐어도 60은 되어 보였고, 얼굴색도 늙고 태양빛에 타서 중국계 동양 사람인지, 아니면 인디안 조상을 둔 아메리카 인디언인지 분간키 어려웠다.

그날 주말 오후에 무료한 시간을 소일하겠다고 한인타운에서 제일 가까운 산타모니카 피어(선착장)에 낚싯대 하나를 들고 나갔을 때만 해도 그는 내 시야에 없었다. 나는 늘 하던 식으로 한가한 자리 한 켠에 낚싯대를 마디마다 풀어 끼우고, 추를 달고 또 미끼를 끼워 석양이 보이는 서쪽에다 대고 힘껏 던졌다. 아주 시원했다. 릴 낚시를 하는 이들은 대개 이 맛을 즐긴다.

물론 찌를 쳐다보며 고기가 미끼 앞에서 깔쭉거리다 덥석 물었다 싶을 때 당겨 끌어내는 손맛이 최고인 붕어낚시가 재미있다 하겠으나, 소위 릴 낚의 맛은 끌어당기는 맛도 맛이지만 던질 때 후련하게 낚싯줄이 거침없이 풀려나가는 맛도 또한 일품이다. 마치 골프 칠 때 1번우드 채로 휘둘러 쳐 잘 맞은 타구를 보는 것만큼이나 짜릿하다. 어떤 일본인 명사는 이 맛을 비유해서 마음에 품었던 여인을 품에 안아보는 맛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그 날도 이렇게 잘 미끼를 던져 놓고 여유를 가지고 낚싯대를 죽 끌어서 선착장 난간에 걸쳐놓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눈에 보이지 않던 노인이 바로 내 맞은편에다 낚시를 던져 놓고 담뱃불을 붙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역시 주말 오후여서 피어는 한가로운 분위기가 구석구석 배어 있었다. 해변에는 사람들이 해수욕이나 일광욕을 위하여 누워 있고, 백사장에서 발리볼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구리 빛 육체가 상어나 돌고래 같은 바다동물의 미끈한 몸뚱이처럼 번뜩였다. 선착장 남쪽에 설치해 놓은 메리고라운드의 평화스런 회전이 주말 운치를 더했다.

그 때였다.“! -낚싯대!”

누군가의 소리를 듣고 내가 목소리가 들리는 곳과 아울러 내 낚시 놓은 곳을 보았다. 웬일인가? 낚싯대가 어느새 그 종적이 없었다. 그제야 나는 눈을 들고 석양이 비치는 바다를 내다보았다. 거기에 내 초라한 낚싯대가 쏜살 같이 서 쪽을 향하여 떠가는 것이 아닌가. 물위에서 힘없이 끌려 미끄러져 가는 낚싯대가 마치 어쩔 수 없이 저항 못할 괴물에 끌려가며 소리 지르는 가엾은 애완동물과도 같았다. 어떤 큰 놈이 내 미끼를 물고 달아나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속수무책 점점 멀어져 가는 낚싯대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무슨 일이야?”

그 때 어느 새 내 곁에 온 그 홈리스 영감이 물었다. “내 낚싯대가......” 나는 어이가 없어 말도 다 못하고 어깨만 들썩했다.

그러자 그가 자리로 돌아가 자신의 쓰고 있지 않은 낚싯대를 꼬나 쥐더니 줄에다 납으로 된 추와 삼지 바늘을 매다는 거였다. 하더니 순식간에 그걸 가지고 와서 크게 휘둘러 던졌다.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어림도 없어 보였다. 바다를 훑터 보니 내 낚싯대는 이미 가물가물, 어림잡아도 미식축구장의 반을 넘는 대략 100킬로 미터 밖으로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어쨌든 나는 숨을 죽이고 그가 던진 줄이 나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가 던진 줄은 허공을 뚫고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고 있다. 그걸 보는 순간 나의 생각은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분명 낚시의 고수다’.

나였다면 아무리 힘주어 던졌어도 그의 반의반도 어림없는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낚싯대를 쥐고 그 감을 살피던 그의 머리가 끄덕끄덕했다. ‘와우!’ 나는 내심 소리쳤다. 그가 미식축구 구장의 절반 이상이나 도망간 내 낚싯대를 다시 갈고리에 걸어 매는데 성공을 한 것이다. 그는 천천히 릴을 감기 시작했다.

선착장엔 모든 낚시꾼들이 모여들어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얼마 후 낚싯대는 다시 끌려와 우리 손에 쥐어졌고, 이제 문제는 낚싯대를 끌고 간 그 괴물의 정체였다. 다행이도 그것은 아직도 내 낚싯줄 끝에 매달려서 힘겹게 저항하며 끌려오고 있었다. 그건 분명 대물임에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야 그 무거운 낚싯대를 통째로 끌어갈 힘이 어디 있었겠는가.

아직도 영감은 낚싯줄을 팽팽하게 잡고 릴을 천천히 감아 고기와의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그의 릴 다루는 실력만 봐도 그는 신출내기가 아님이 분명했다. 고기가 물렸을 때는 실을 너무 당겨도, 또는 너무 늦추어도 안 되는 것이다. 너무 세게 당기면 고기의 저항을 못 이겨 줄이 끊어지거나 살점이 떨어져나가 놓치게 된다. 반대로 실을 너무 늦추면 고기가 여유가 생겨 몸을 틀어 빠져 도망가게 마련이다. 어쨌거나 불행한 대물은 고수 낚시꾼에 걸려 다시 우리 앞에 끌려 왔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벌어진 내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고기는 보기 드문 괴물이었고, 그 너비 1미터가 넘는 가오리 이었다.

영감은 그제야 낚시와 가오리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나는 고마워서 꾸벅하고 인사를 하는 수밖에 다른 예를 잊어먹고 있었다. 그리곤 어떻게 고마움을 전할까, 고심 끝에 잡힌 가오리를 끌고 그에게로 갔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걸 당신이 가져가시오, 당신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소!”

이렇게 해서 우리는 서로간의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그에 대한 몇 가지 사실들을 알아냈다. 즉 그는 아메리칸 인디안의 후예라는 것과, 그가 이 바닷가에 자주 오는 이유는 낚시도 낚시려니와 억울하게 죽어 이곳에 떠도는 인디안 조상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아메리칸 인디안의 조상들은 억울하게도 총을 가진 백인들과의 싸움에서 죽어 갔고, 그들의 많은 시체가 이 바닷가를 둘러싼 산등성이에 수도 없이 묻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늘 내가 잡는 첫 고기를 도로 놓아주지요. 그러면 고기가 더 잘 잡혀요. 일종의 미신이지만, 나는 그렇게 해서 이곳을 떠도는 영혼들을 위로한다고 믿습니다.”

말을 듣다가 나도 평소 궁금하던 사실을 뜬금없이 물었다.

혹시 당신들이 아이를 낳으면 궁둥이에 검은 점이 있습니까?

어떻게 아셨소? 검은 점이 있지요. 꼭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랫동안의 내 안에서 맴돌던 수수께끼가 풀린 기분이었다. 틀림없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후예였다. 그들은 우리와 같이 몽고리안의 혈통을 가지고 살다가 빙하기 시대에 시베리아와 베링 해협을 가로질러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한 몽고의 후예가 틀림없을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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