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달력을 받으면 얼른 벽에 걸고 싶다. 날짜가 남았지만 마지막 장을 떼어내고 새해 달력을 달고 만다. 평소에는 몇 달 치를 한꺼번에 떼 낼 정도로 무관심하면서 새해 달력은 특별 대우이다. 사실 해가 가는지 오는지 실감이 나질 않는다. 한해의 마무리는 대나무의 마디처럼 중간중간을 묶어주는 역할이 아닐까 싶다. 매듭의 구분은 지난 날을 돌아볼 때 더욱 유용하다.
내 인생의 첫 밀레니엄인 2000년 새해를 생각한다. 우리 가족은, 새 천년 시작과 맞춰 전시와 공연 공간으로 지은 세계 최대 규모의 건축물인 영국의 밀레니엄 돔 안에 있었다. 대대적인 홍보에 비해 볼거리는 별로였던 기억이 남아 있다. 관광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돔 건설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지만, 실패로 끝났으며 21세기 런던 건축의 최악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살아 생전 3000년대를 맞을 가망은 없으니 10년이나 5년 단위로 의미를 두어 볼까. 아니, 모든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야 할 나이가 된 것 같다. 그렇다면 세월이 흐른 후 나는 올해의 무엇을 떠올릴까.
그렇게 벼르던 친정엄마 실버타운 입주를 돕기 위해 한국을 다녀왔다. 엄마가 소원하시던 성당과 병원을 갖춘 따뜻한 곳에 모셔놓고 한국 추위 소식에 무덤덤해졌다. 멀리 살아 자매들에게 빚진 기분에서도 조금 놓여났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아꼈던 조카가 상사 주재원으로 우리 집 근처에서 1년 살다가 회사의 프로젝트 변경으로 며칠 전 한국으로 돌아갔다.
올해도 롤모델로 삼고 싶은 분들과의 인연으로 인해 마음이 조금 더 부요해졌다. 정갈한 차림에 단정한 걸음걸이의 그분 손에는 비닐봉지와 집게가 들려있다. 이른 아침 동네 공원을 돌며 쓰레기를 주어 담는 모습을 먼발치서 바라본다. 어쩌다 마주치면 안부 인사나 나눌 뿐이지만, 그 유명한 K업체 안주인의 반듯한 정신에 정신이 번쩍 난다.
두 번의 암 투병을 견뎌내고 글쓰기와 후학 지도로 문학의 열정을 불태울 뿐 아니라, 깊은 신앙심으로 섬김의 나날을 보내느라 도무지 쉴 틈이 없는 K시인. 곧 쓰러질 것 같은 가녀린 노구지만 차선 끼어들기를 해야 할 때 '미인계 한번 써 볼게' 하며 창을 열고 뒤차에게 적극적인 손짓을 날려보낸다. 죽음의 그림자에 주눅 들지 않는, 팔팔한 유머 감각이 사람을 얼마나 유쾌하게 하는지.
이번에 한국에서 만난 내 초등 친구 P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펄펄 날던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쓰러져 3년째 치료 중이다. 그것은 정말 어느 날 갑자기였다. 그동안 나는 친구의 지극한 남편 사랑을 보고 들었다. 그 경황 중에도 미국서 온 나를 위해 다른 친구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만든 것도 그 친구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서 나를 돌아보게 한다.
해가 바뀌면 매듭의 숫자 하나 더해지고 또다시 출발하는 거다. 반듯한 정신, 유머감각,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보석같은 사람들을 보고 배우며 조금 더 자라길 소망한다. 실망스러운 사람으로 인해 보석은 더욱 빛날 것이기에 새해 달력 칸칸을 희망이라는 단어로 채워본다.
미주 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5.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