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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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다락방에서 찾은 동전

2006.03.31 02:16

정문선 조회 수:648 추천:151

다락방에서 찾은 동전 겨울이 오면 잦은 감기 때문에, 더 약해저가는 남편의 심장을 돌보며, 자나 깨나 멀리 미국으로 떠나보낸 큰 딸 걱정으로 눈물 짖는 고향의 어머님을 그리며, 언제나 내 마음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간암 선고를 받고는, 매일 그 비는 나에게 소낙비를 퍼붓다, 폭풍으로 변하였다. 눈 뜨면 병원으로, 주어진 나의 하루 힘이 다 삭으러 지면 집으로, 그것밖에 몰랐던 5개월! 그렇게 보고 싶던 어머니도 잊어버린 끔찍한 5개월....! 그 사람은 의사가 말한 6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썩어가던 마음이 퍼렇게 몸을 덮더니, 허허 벌판 미국 땅에 나 혼자 두고, 녹 쓴 구리 색깔 몸으로 변하여, 이 세상을 떠났다. 울음 외엔 아무것 도 할 수 없는 수백 날이 흐르고,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은 채 수천 날이 흐르고... 무엇인가 사라 저 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렇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에게도 세월이 약이라고, 조금씩, 조금씩 망그러진 집안을 다시 돌보게 되었다. 산 사람은 살기 마련이라던 가? 남편을 보낸 서러움이 한시름 가시기 시작할 즈음, 대 청소를 하기로 결심하고, 실시하였다. 오랫동안 남편의 암투-병으로 몰락되어가는 집이라 며칠을 치워도 산뜻해지지 않았다. 이사 올 때 방이 좁아, 무조건 다락방으로 올려놓고, 매일 매일 분주하여, 까맣게 잊어버린 다락방에 쌓아놓은 물건들! 사다리로 올라가는 것이 번거로워, 한번도 올라 가보지 못한 다락방 청소도 시작되었다. 생쥐 냄새하며, 거미줄이 머리와 얼굴을 유령처럼 건드려대는 것을, 땀으로 문지르니, 차라리 굴뚝 안이라도 들어갔다 나온 것이 나을 정도였다. “ 이젠 그 사람 물건을 정리 해야지!... 그 사람을 잊어야 한 단다!... 어머니와 딸내미를 위하여, 산 사람을 위하여!” 다락의 물건들이 힘들게 내려젓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게 내린 물건들은 하나도 쓸 수가 없었다. 이미 생쥐들의 용변으로, 잘 섞은 쓰레기가 되어 내버려야 할 물건들로 변해 있었다. 사다리를 놓고 힘들게 올렸던 귀한 물건들! 생쥐들을 위한 침실이 될지 정말로 생각 하지 못했었다. 한번씩 생각날 때면 “거기 안전하게 있겠지” 언제나 그러고 말았다. 바쁜 이민 생활 탓 이였다. 모든 것이 못쓸 쓰레기로 변해버린 것이 아깝고 짜증이 났다. 신경질 나서, 무조건 아래 창고로 내려 떨어트리는데, 무엇인가 꿈쩍도 아니한다. 몇 개의 묵직한 깡통들이 꼼짝도 아니했다. “이게 뭐야!” 뚜껑을 열어보았다. 웬 동전들이 꽉 차 있었다. 너무 무거워서 나누고, 나누어서 내려진 동전들은 아주 오래된 동전이었다. 동전에 상식이 없었던 나는, 살림에 보태지는 것에만 감사하며, 복잡하게 쌓이고만 있는 물건들도 싫고 해서.... 그날부터 때 묻은 동전을 없애기 위해, 동전을 세는 시간이 늘고, 동전으로 갈 수 있는 장보기가 바빴다. 어느 하루, 동전이 은전인 줄도 모르고, 이십 불을 헤아려 자동차에 가스를 넣으러 갔다. “동전이라 미안해요.” 나 따내는 세기 쉬운 지폐를 못 주는 것이 미안했었다. 얼른 색다른 은전을 알아차린 멕시칸 케쉬어! 미안 해 하는 나를 반기며, 그런 동전 더 있으면 얼마든지 가지고 오라고 반색을 한다. 우린 서로 기분이 무척 좋았다. 마스크를 하고 숨도 제대로 못 쉬었던 그날의 땀 흘린 수고가 달아나고 있었다. 며칠 후, 나는 또 동전을 헤아려, 쇼핑 몰로 필요 한 물건을 찾아 나섰다. 무거운 동전 치울 수만 있으면, 아무거나 사고 싶었지만, 남편이 나 몰래 다락에 까지 올라가 모은 돈, 아무렇게 낭비 할 수는 없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고운 마음에 대한 대답으로 눈에 들어 온 반가운 간판이 있었다. “동전 삽니다.” 어깨를 으쓱이며 들어 가, 가져간 동전을 보이며, 살 것인가 물어 보았다. 삼십 불 되는 동전을 백 오십 불로, 그것도 가벼운 지폐로 바꾸어 주는 미국 할아버지! 오래된 우표처럼 생긴 그 할아버지가 산타 할아버지 같기도 했다. "오! 마이 갓! (Oh! My god!)" 골동품 가게를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급하면 튀어 나오는 미국말 함성을 지른다. 혹시 할아버지가 계산 잘 못한 것 아닐 가? ‘이건 진짜 땡이잖아? “ 그제야 띵하고 녹슨 두뇌가 구르기 시작했다. 또 정말 누가 계산을 잘못 한 것인지 확인도 하고 싶었다. “할아버지 꽤나 늙어 보이셨거든요.” 혼자 독백을 한 그 다음 날, 그 전날의 두 배 만큼 동전을 들고도, 무거운 줄도 모르게 신이나, 그 동전 할아버지를 다시 찾아 갔다. 싱긋이 웃으며, 반갑게 맞이해 주고는 똑 같이 다섯 배나 더 처 주는 동전 값은 횡재였다. 할아버지 계산이 잘 못 된 것이 아니라 나의 무식 착오 인 것을 확인 하는, 꽤 심각한 날이기도 했다. 다시, 동전의 가치를 알고 난 삼일 째, 동전 모두를 들고 나와 오천 달라 지폐와 바꾸어 혹시 강도라도 딸아 올려나, 무섭기도 하고, 거기다 하루 만에 몇 배나 늘어난 액수에 흥분한 나는, 이 돈 저돈 저축까지 털어, 그렇게 사고 싶었던 새 차를 샀다. 날라 가는 차! 창문을 활짝 열고 팝송을 들으며, 이곳저곳으로 달린다. 다락방에서 찾은 동전은 자동차 앞 과 뒤, 네 바퀴가 되고, 그 사람이 언제나 돌리며 달리던 핸들도 되고, 동그란 모양의 엔진도 되었나보다. 남편은 그 돈으로 무엇을 하려고, 다락방에 숨어 동전을 모우고 있었을 가? 멋진 새 차에 나 혼자만이 달리는........! 그렇게 철없이 달리던 며칠 후, 텅 빈 옆 자리가 점점 추위를 느꼈다. 이것이 그 사람이 꿈꾸어 온 우리들의 미래 였을까? 날이 갈수록 어깨가 시려오는, 외로워진 나에 대한 위로금을 혼자서 미리 알고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가? 횡재는 잊으려던 그리움을, 고독으로 다시 채우며, 내 몸으로 젖어 왔다. 그리움 그 자체가 되어 하루하루 그 무게를 더 해 가고 있는 다락방에서 찾은 동전들, 우리들의 미래는 그늘이 지고, 척추가 구부러지면서도 맵시야 어떻게 되던, 한 송이의 꽃 몽오리를 맺기 위하여, 깨진 창틈 사이로 한 줄기의 햇살을 따라 길게 목을 늘리는 주인 잃은 난(蘭)처럼 나의 목은 주름지고 가늘어 저 갔다. 나비처럼 나르는 잘 난, 나의 새 차는 자꾸만 자꾸만 내 차 옆 선에서, 금방이라도 어딘가 고장이 날 것 같은 낡은 차로도, 서로 마주보며 웃고 달리는 노부부의 가난을 훔쳐본다. 함께 머나먼 이국땅으로 이민 와서, 말을 몰라도 동전 값을 몰라도 행복해 하고 있는 그 웃음에 질투를 느낀다. 허무가 온다. 무거운 휠체어를 밀고 다녀도, 바지에 실수를 해도, 힘겨운 줄도 몰랐던 그 사람이 그립다. 부서지는 그리움 ....,비밀이 묻어있는 동전! 손해를 보았던 횡재가 되었던, 아무 상관 할 것이 못된다. 다정했던 음성을 한번이라도 더 듣고 싶을 뿐이다. 테이프에 남아있는 녹음 된 육성이 아닌, 목소리를 한 번만이라도 듣고 싶다. 무겁던 동전의 무게 같은 텁텁한 그분의 목소리야 말로 값진 선물일텐데. 한 아름의 꽃만 꽂으면, 신방이라도 차려도 될 것처럼 말끔해진 다락은 이제,빈방이 되었다. 내가 이 곳에 사는 동안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빈방으로 남을 것이다. 허공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은, 아내의 허옇게 바랜 인생일랑 접어버리고, 이젠 나 홀로 나의 길을 가야 하나보다. 새해아침처럼 밝아오는 꿈에 동조하며, 저녁마다 아름답게 지는 노을 사이의 하얀 달처럼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얼굴을 가끔씩 보며...... 그렇게 살아 가야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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