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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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나는 별아저씨/정현종

2008.03.30 07:08

정문선 조회 수:109 추천:21

나는 별아저씨 -정현종- 나는 별아저씨 별아 나를 삼촌이라 불러다오 별아 나는 너의 삼촌 나는 별아저씨. 나는 바람남편 바람아 나를 서방이라고 불러다오 너와 나는 마음이 아주 잘 맞아 나는 바람남편이지. 나는 그리고 침묵의 아들 어머니이신 침묵 언어의 하느님이신 침묵의 돔(Dome) 아래서 나는 예배한다 우리의 생(生)은 침묵 우리의 죽음은 말의 시작 이 천하(天下) 못된 사랑을 보아라 나는 별아저씨 바람남편이지 - 시집 <고통의 축제>(1974) - 해 설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정현종의 첫 시집 『사물의 꿈』에 실린 이 시는 독특한 제목과 시적 발상이 흥미를 끈다. 시의 화자는 별과 바람 등의 천체와 하나의 가계(家系)를 이루기를 소망하고 있다. 나의 직분은 '별아저씨'이다. 별은 나에게 삼촌이라 불러야 한다. 그리고 나는 바람남편이다. 바람은 나에게 서방이라 불러야 한다. 마치 동화나 만화영화의 한장면을 보는 듯한 공상적이면서도 순진한 상상력이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시인의 의도는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사물과의 친화이며, 더 나아가 사물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별의 삼촌이며 바람의 남편이 되기 위해서는 별과 바람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그들의 본질과 일치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하다. '삼촌'과 '남편'이라는 친지, 가족 관계의 명칭은 별, 바람 등의 사물과 화자가 같은 본성을 지닌 동류(同類)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비유이다. 그리고 나는 또 침묵의 아들이다. 침묵은 나의 어머니이고, 언어의 하느님이다. 나는 침묵의 돔 아래서 예배를 한다. 사물이 가진 공통적인 속성은 그들이 말이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단지 유정(有情)한 존재인 인간만이 말을 한다. 말이 없는 사물들은 그들의 존재를 표나게 드러내지 않고 다만 그 자체로, 본성 그대로 존재한다. 사르트르는 이같은 사물의 닫혀 있음과 부동성(不動性) 앞에서 실존하는 인간으로서 구토를 느끼기도 했지만, 정현종은 오히려 그런 사물의 상태를 동경한다. 말로 표현하거나, 의도하거나, 억지로 드러내지 않는 상태. 그것은 아마도 '무(無)'의 상태일 것이다. 그러므로 정현종에게는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생은 침묵이고 죽음은 말의 시작이 된다. 사물은 소멸할 때 비로소 그 존재의 흔적과 무게를 남기므로. 인간의 영역을 넘어 무정(無情)한 사물과의 완벽한 합일을 꿈꾸는 나는 스스로를 '천하 못된 사람'이라고 지칭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고 있지만, 그는 별아저씨, 바람남편이 되고 싶은 소망을 버리지 않는다. - 해설 : 최동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