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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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어머니/ 김수영

2008.04.02 11:14

정문선 조회 수:237 추천:73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 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을 지고 머리도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 <거대한 뿌리>(1965)-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소시민적, 반성적, 비판적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이나 사건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정작 대적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있는 화자 자신의 허위의식을 폭로하는 말. * 왕궁, 왕궁의 음탕 → 과거 전제시대 군주들과 지배자들의 권력의 산실로, 타파되어야 할 권력을 상징함. *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 → 이러한 욕설과 비어들은 시인 자신의 속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임. *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 사소한 일상사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나 고난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화자 자신이 현재 왜소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나타냄. *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 방관자적 자세 * 땅주인, 구청 직원, 동회직원 → 권력이나 힘을 가진 자 ◆ 주제 : 소시민적 삶의 자세에 대한 반성과 비판 지식인의 무능과 허위 의식에 대한 고발과 자기 반성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문제적 현실에 저항하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만 분개하는 자신에 대한 반성 ◆ 2연 : 자유를 위해 부르짖지도 못하면서 사소한 일에 증오심을 불태우는 자신에 대한 반성 ◆ 3연 : 시인 자신의 옹졸한 모습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고 함. ◆ 4연 : 신변적인 일에만 예민하게 반응하는 옹졸한 근성에 대한 반성 ◆ 5연 : 현실 문제에 정면으로 저항하지 못하고 비켜 서 있는 비겁함의 고백 ◆ 6연 : 권력을 지닌 자들에게는 저항하지 못하고 힘없는 자들에게는 반항하는 옹졸함에 대한 반성 ◆ 7연 : 보잘것없는 존재로서 느끼는 자괴감.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제목 그대로 어느날 고궁에 갔다가 나오면서 우리 역사와 현실을 생각해보고, 자신의 삶과 시를 쓰는 행위가 얼마나 한심한 것인지 되돌아보고 비판하는 내용이다. 김수영에게 있어서 현실은 하나의 벽이다. 5,60년대 우리 현실은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세계이다.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현실의 벽을 넘어 시적 완성을 도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실의 벽이 두터울수록 우리의 삶은 그 안에 갇혀 구속받게 되고 인간의 자유의지는 현실의 벽에 부딪쳐 좌절되게 마련이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현실의 벽에 부딪쳐 왜소화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여건과 그것을 넘어서 완전한 사회를 구축하려는 시인의 갈등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시이다. 특히 외부 세계를 비판할 때 그것을 직접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못난 자신을 비판함으로써 김수영은 우리의 도덕적 양심을 일깨우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시대는 변했지만, 여전히 권력을 쥔 자들의 힘의 논리에 따라 국내외적 상황(소설가와 언론에 대한 정치적인 탄압, 월남 파병 등 자유에 대한 전제적 강압 등)이 전개되는 시대적 모순과 부조리를 목도하면서, 부조리의 현실에 맞서지 못하는 비겁성과 일상의 사소한 일에만 분개하는 옹졸함을 지닌 보잘 것 없는 자신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 이 작품은 시인 자신의 소시민적 행동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진지한 자기 반성의 시이다. [더 읽을거리] : 해설 이희중 자신이 싫어질 때가 있다. 시인은 사라져 버린 왕조의 궁궐을,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둘러 보았고, 그 부근에서 설렁탕을 먹었던 모양이다. 또한 그때 그는 이 일체의 일정에 대해 까닭모를 짜증을 느꼈던 것이다. 그의 짜증 또는 분개는 사라진 왕조의 우울한 유물인 궁궐의 스산함과 설렁탕의 맛없음에 대해 일차적으로 표출된다. 그러면서 시인은 자신의 분노가 특히 후자에게 더 공격적임을 스스로 분석해 내고, 자신의 옹졸함과 비겁함에 대해 이차적으로 분개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체질적으로 본질을 우회하고 마는, 그리고 비본질적인 것을 단지 편리함과 심리적인 안정 때문에 물고 늘어지는 나약한 지식인의 속성에 대한 짜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조차도 사실은 비겁함과 옹졸함의 발로일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시인이 진단한 자신의 옹졸함은 뿌리가 깊은 것이다. 자신에 대한 한없는 힐난에 잠겨 들지 않고, 그 뿌리를 짚어가며 사회적, 현실적인 문제로 한 걸음씩 다가서는 비판적 지성의 발길에 이 시의 힘과 재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언론의 자유에 대하여, 월남파병에 대한 태도표명에 대하여,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서 전쟁 때의 수모에 대하여, 이제 시인은 더없이 냉정하게 자신의 태도를 비판한다. 이윽고 그의 자기 비판, 또는 자기 진단은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라는 표현에 귀결되며, 그것이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라는 단정에 이른다. 결구 '모래야 나는 얼만큼 작으냐'는, 일상의 작은 행동을 깊이 파고들어 시인이 이른 자기성찰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무서우리만큼 철저하게 수행되는 이 시의 자기비판에서 우리는 시에서 흔히 목도할 수 있는 자기 미화와 과시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이와 같은 작품에서 우리는 시가 진정한 내면의 탐색 과정임을 느낄 수 있다. 이 시를 통해 우리는 시인 김수영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심을 가졌느냐보다는, 얼마나 치열한 정신의 소유자인지를 더 잘 알 게 된다. 자신에 대한 냉정한 태도는, 바람직한 경우 세상과 삶에 대한 엄정한 태도에 곧바로 이어진다. 이 시는 바로 그렇다.